> 종합
[학술]디아스포라의 어원과 역사
편집국  |  pressyu@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1504호] 승인 2006.06.07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1. 디아스포라의 개념


디아스포라는 일상적인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 아니다. 우리말로는 민족분산(民族分散) 또는 민족이산(民族離散)으로 번역되는데, 단지 같은 민족성원들이 세계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는 과정뿐만 아니라 분산한 동족들과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와 공동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어원적으로 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 전치사 dia(영어로 “over,” 우리말로 “~를 넘어”)와 동사 spero(영어로 “to sow,” 우리말로 “뿌리다”)에서 유래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600~800년에 소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식민지로 삼은 뒤 그곳으로 자국민을 이주시켜 세력을 확장하였다. 이때 디아스포라는 이주와 식민지 건설을 의미하는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가졌다. 이후 디아스포라는 유대인의 유랑을 의미하는 뜻으로 쓰이면서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는 영어 대문자 “D”로 시작하여 “Diaspora”로 표기하는데,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바빌론 유수 (586 B.C.) 이후 팔레스타인 밖에서 흩어져 사는 유대인 거류지” 또는 “팔레스타인사람 또는 근대 이스라엘 밖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가리킨다.
1990년대에 들어서 디아스포라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디아스포라는 유대인의 경험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국제이주, 망명, 난민, 이주노동자, 민족공동체, 문화적 차이, 정체성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사프란(Safran)은 디아스포라를 “국외로 추방된 소수 집단 공동체(expatriate minority communities)”라고 정의했다. 사프란은 최근에 디아스포라는 국외 추방자, 정치적 난민, 외국인, 이민자, 소수인종 및 민족집단 성원과 같은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을 ‘은유적으로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퇴뢰리안(Tololian)은 디아스포라를 “한때 유대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의 분산을 가리켰지만 이제는 이주민, 국외로 추방된 난민, 초빙 노동자, 망명자 공동체, 소수 민족 공동체와 같은 용어도 포함하는 보다 넓은 어원을 가진 의미”라고 확대 해석했다.
다양한 형태의 디아스포라를 비교하고 통합적 시각에서 보기 위해 코헨(Cohen)은 그의 저서 좬Global Diasporas좭에서 디아스포라를 “피해자(victim)”, “노동(labor)”, “통상(trade)”, “제국(imperial)”, “문화(culture)” 디아스포라로 구분한다. “피해자 디아스포라”는 유태인, 아프리카인,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타인처럼 정치적 박해, 노예, 민족 대량학살 등의 박해로 모국을 떠나 이방에서 유랑생활을 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노동 디아스포라”는 인도인과 이탈리아인처럼 계약 노동자로 이주해서 거주국에서 자신들만의 민족공동체를 형성하는 경우이다. “통상 디아스포라”는 서남아시아의 중국인과 서아프리카의 레바논인처럼 통상을 목적으로 모국을 떠나 타국에서 자신들만의 민족공동체를 형성하고서도 모국의 고향과 친척과 긴밀한 연결망과 유대감을 유지하는 경우이다. “제국 디아스포라”는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과 같은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식민지를 개척한 후 그곳에 세운 공동체를 가리킨다. “문화 디아스포라”는 카리브해 출신의 이주민들이 문학, 정치적 이념, 종교적 신념, 음악과 생활양식에 의해 공통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렇듯 코헨은 유태인의 디아스포라는 여러 디아스포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유태인 디아스포라의 전통과 그 부정적 이미지를 초월하는 것이 디아스포라 연구에 있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코헨은 다양한 디아스포라를 비교하면서 사프란이 제시한 디아스포라의 6가지 조건들을 확장했다. 코헨이 제시한 조건들은 (1) 기원지로부터 보통 비극적인 방식으로 2개 이상의 이방으로의 분산, (2) 노동, 통상, 또는 식민지 개척을 위해 모국으로부터의 인구 확장, (3) 모국에 대한 집합적인 기억과 신화, (4) 상상의 고국에 대한 이상화와 그것의 유지, 복원, 안전 및 번영, 심지어 창조에 대한 집합적인 헌신, (5) 귀환 운동의 발생, (6) 공통의 역사와 공동운명체 의식에 기초한 강하고 지속적인 민족집단의식의 형성, (7) 거주국 사회와의 힘들고 갈등적인 관계, (8) 타국의 동족과의 감정이입과 연대감, (9) 다문화주의를 허용하는 거주국 사회에서 고유하고 창조적이며 풍성한 생활의 가능성이다. 이런 면에서 코헨은 디아스포라가 단지 비극적인 사건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이주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이주하는 것도 포함했다. 그리고 이주민들이 거주국에서 차별과 핍박을 받는 비참한 존재만이 아니라 그들을 수용하는 관용적인 사회에서는 그들만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문화와 생활양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유태인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아웃사이더로 살면서 학문, 문화, 예술 분야에서 창조적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사프란과 코헨의 디아스포라 개념은 어디까지나 이념형으로 파악해야 하며 그들이 제시한 조건들을 모두 충족해야 디아스포라고 보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최근의 공동체 연구에서 공동체를 구성원들의 상호작용, 소속감, 연대감의 수준에 따라 공동체성이 강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약하게 나타나기도 하는 변수의 개념으로 보는 것은 디아스포라를 이해하는 데 시사점을 준다.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디아스포라 중에는 사프란과 코헨이 제시한 속성들을 대부분 충족하여 디아스포라의 원형에 가까운 것이 있는가 하면 부분적으로만 디아스포라의 성격이 나타나는 것도 있다. 이렇게 디아스포라를 가부가 아니라 정도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다양한 형태의 디아스포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밧줄의 힘은 밧줄을 관통하는 하나의 섬유가 아니라 서로 겹친 수많은 섬유에서 나온다는 비텐스타인(Wittenstein)의 비유는 디아스포라를 이해하는 도움이 된다. 즉 디아스포라를 구성하는 여러 조건들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여러 조건들이 서로 중첩되면서 ‘디아스포라 밧줄’을 만든다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앞서 제시한 디아스포라의 모든 조건들을 충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핵심적인 조건들을 갖춘 경우에도 디아스포라로 보는 것이 무방하다.

2. 코리안 디아스포라

위에서 정의한 디아스포라 개념을 통해 볼 때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재외한인의 이주 및 정착의 경험은 디아스포라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거에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또는 ‘은자의 왕국’으로 불리던 조선의 백성들이 19세기 중엽부터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만주와 연해주로 떠나면서 시작한 한민족의 이주와 정착의 역사는 어언 1세기 반이 되었다. 그동안 한민족은 미국, 멕시코, 일본, 아르헨티나, 브라질, 독일, 스페인, 캐나다, 호주, 인도네시아 등 거의 전 세계로 퍼져나가 초기 정착의 힘든 역경을 딛고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멕시코와 캐나다를 경유해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한인들이 있고,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의 코리아타운과 도쿄와 오사카의 코리아타운에는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한인들이 적지 않다. 북한의 살인적인 식량난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언제 체포되어 강제 송환될지 모르는 불안감속에 유랑하는 탈북자의 처지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처절하고 절박하다. 그런가하면 자녀의 영어 조기교육을 위해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어머니가 자녀들과 함께 떠나고 아버지는 한국에 남아 뒷바라지하는 ‘기러기 가족’은 이민의 새로운 풍속도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높아진 이민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2003년 8월 한 TV홈쇼핑업체에서 내놓은 ‘캐나다 이민 알선 상품’에 수천 명이 몰리는 과히 ‘이민열풍’ 수준이다. 급기야는 자녀에게 미국 또는 캐나다 시민권을 주기 위해 출산을 앞둔 산모가 출국하는 소위 ‘원정출산’이 매년 5,000∼6,000명꼴로 일어나고 있다. 이렇듯 한민족의 이주와 정착은 이미 끝나버린 역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진행 중인 다이내믹한 과정이다.
상이한 배경과 동기를 가지고 조국을 떠나 다양한 유형의 정치경제, 사회문화, 민족관계를 가진 거주국에서 살아온 재외한인들의 경험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들의 경험에는 개별적이고 고유한 측면들도 있지만 일반화할 수 있는 공통적인 측면들도 있다. 이들의 경험은 우연하고 무작위적이라기보다는 주어진 역사적, 구조적 조건하에서 일정한 패턴을 띠며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주어진 제약조건과 기회구조에 재외한인들이 능동적 행위자로서 대응하고 그 결과로서 자신들과 주위 환경이 변화해온 것이 재외한인의 이주와 정착의 경험이다.
재외한인의 경험에는 이주, 차별, 적응, 문화접변, 동화, 공동체, 민족문화와 민족정체성 등 다양한 주제들이 있다. 각각의 주제가 독립적인 연구영역이며 실제로 위의 각 주제에 대해 역사학, 인류학, 민속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언어학 등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들은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간의 관계를 통합적인 시각에서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디아스포라는 재외한인 경험의 다양한 측면들을 포괄하면서 그들 간의 연관성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다.

3. 디아스포라 이론의 확장

최근의 국제이주 패턴을 살펴보면 기존의 디아스포라 이론을 확장할 필요가 느껴진다. 기존 디아스포라가 모국에서 거주국으로의 일방향적인 이주를 가정했다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하는 인구이동은 쌍방향적이라는 점이다. 한국인들이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로 사업, 취업, 학업, 여행 등의 목적으로 가는 반면 이들 국가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취업, 학업, 결혼 등의 목적으로 한국으로 오고 있다. 2006년 4월 현재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820,173명으로 이는 한국인구의 1.7%에 해당한다.
국내 외국인의 대부분은 아시아 국가 출신인데, 중국인이 38%, 미국인이 14%, 일본인이 5%, 베트남인이 5%를 차지한다. 국내 아시아인의 증가에는 국제결혼도 큰 몫을 하고 있다. 국제결혼의 붐이 시작된 1990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은 127,762명에 달한다. 2005년에는 43,121건의 국제결혼이 있었
   
▲사진제공자 : 한국 기술대학교 교양학부 유경미 대우교수
   
 
는데 이것은 한국의 혼인신고 건수의 13.6%에 해당하고 농어촌 지역에서는 36%에 달한다. 결혼이민자 여성들의 상당수가 중국, 베트남, 필리핀에서 온 아시아 여성들이다. 한국인과 아시아인간의 국제결혼은 한국과 아시아 국가간의 초국적 가족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한편 국내에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은 특정 국가나 민족별로 집단거주지를 형성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 원곡동의 ‘국경 없는 마을’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인들과 함께 공존하는 다문화공동체를 형성하는 대표적인 지역공동체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단일혈통과 공통의 문화를 민족 또는 국민정체성의 근간으로 삼아 온 한국인에게 정주 외국인 노동자와 그들의 공동체는 한국인에 대한 정체성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디아스포라가 발생한 모국에 다른 민족의 디아스포라가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국내 외국인 중 최대 규모인 조선족 동포의 경우는 중국으로의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한민족이 모국에서 또 다른 디아스포라를 경험하는 복잡한 경우이다. 한민족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디아스포라를 시작한 지 1세기 반에 이 땅에 타민족의 디아스포라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윤인진교수(고려대 사회학과)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712-749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영남대학교 학생지원센터 306호 영대신문 편집국  |  대표전화 : 053-810-1720~1
등록번호 : 515-82-00041  |  발행인 : 노석균  |  편집인 : 허창덕
Copyright © 2014 영대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