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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식수술

안 됩니다, 그 한마디에 나는 그의 옷깃쯤으로 시선을 떨궜다. 그는 단호했다. 나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 진료실을 나왔다. 내 생각에도 H안과 의사는 구지 부담스러운 일을 떠맡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또 수술을 거부당했다. 지독한 난시(亂視)였다. 난시가 아닌 적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제대로 보는 세상이란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했다. 좀 더 똑바로 무언가 분명히 보려고 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벌처럼 두통과 피로가 찾아왔다. 그러던 스무 살 어느 겨울, 안경이 벗고 싶었다. 렌즈를 맞추러 갔었다. 렌즈가게에선 내 안경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젊은 남자가 렌즈를 건네주었다. 이만 원이었다. 거울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각막 위에 렌즈를 조심스럽게 올렸다. 이정도면 쓸 만하겠다고 내 스스로 주문을 걸어보았으나 온종일 인상만 쓰다가 채 하루를 끼지 못했다. 제대로 렌즈를 맞추기 위해 안과에 갔다. 그러나 시중에 나와 있는 렌즈로는 교정이 불가능하다는 소리만 들었다. 나는 주문제작으로 수입렌즈를 샀었다. 꽤 비싼 값을 지불했다. 이물감으로 채 삼일을 끼지 못했다. 마지막 남은 방법은 라식수술 뿐이었다. 그러나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고, 한 달을 벌어 그 달에 생활비로 다 쓰기도 벅찬 우리 모녀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수술비는 의외의 곳에서 생겼다. 엄마의 유두를 닦아줄 때였다.
침대 커튼을 치고 한자복 상의를 벗겼다. 압박붕대를 벗기자 불균형한 엄마의 두 가슴이 드러났다. 오른쪽 가슴이었다. 젖은 수건을 들고 가까이 다가갔다. 진갈색 유두 아래 오슬오슬 소름이 돋아있었다. 그 위로 새끼손가락 정도 길이의 수술자국이 발갛게 부어올라있었다. 젖먹이 때 이후 엄마의 유두에 이토록 가까이 가본 적은 처음이었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닦았다. 소독약이 굳어 누렇게 딱딱해져버린 그 주변을. 엄마는 유방암 1기였다. 나는 밤낮으로 그녀 곁에서 기꺼이 웃겨주고, 치워주고, 닦아주는 여러 날을 반복했다. 나는 마침내 그녀의 유두주변에 집중했다. 수술부위를 스칠까봐 미간을 찌푸리고 콧등에서 미끄러지는 안경을 한 번 올리는 순간 엄마는 말했다.
“눈 수술할래?”
엄마의 암 보험료는 생각보다 많았다. 엄마는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외숙모, 옛 친구, 이혼한 아버지의 후배 등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이들에게 엄마는 거저줍는 거리의 동전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그런 뜨뜻미지근함과 또 그걸 쉽게 해지하지 못하는 미련함이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다.   
Y안과 의사는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나는 속으로 이제 어느 병원으로 또 가야 하나를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우선 좀 더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나는 간호사에게 이끌려 어느 검사기계 앞에 앉았다. 기계 렌즈에 조심스럽게 눈을 가져다 댔다.
 “눈 크게. 더 크게. 정면에 열기구 보이시죠. 그것만 보세요.”
 정말 열기구였다. 초록색 정삼각형 두 개를 산이라고 이어놓고 그 위에 열기구 하나가 떠있었다. 저건 누가보아도 분명 산은 아니었으나,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산이었다. 저 초록 산 뒤엔 무엇이 숨어 있을까. 어쩌면 다 죽은 나무들이 제 가지를 뻗으며 발악하는 혹독한 겨울이, 아니면 깨진 아스팔트 평야가 있을지도 몰랐다. 문득 저 열기구를 타고 저 너머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시 Y안과 의사 앞에 앉았을 때 의사는 아까보다 더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차트를 덮었다. 그의 한 마디는 단호했다. 합시다. 그의 옷깃쯤으로 시선을 떨굴 준비를 하다 깜짝 놀라 그의 눈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는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통증과 부작용은 책임질 수 없습니다.”
수술실 침대에 누웠다. 의사는 내 머리 위쪽에 앉아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부작용은 책임질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수술을 할 수 있다는 벅찬 말의 실내를 둘러보느라 바깥경치에 있는 통증과 부작용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눈을 감지 말고 초록색 불만 보라고 했다. 각막을 태우는 중엔 정면에 초록빛 불이 들어왔다. 나는 초록빛을 보느라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없었지만 간호사며 의사며 모두가 나를 집중하고 있을 것이다. 그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낯선 수술실 침대에 누워있기 때문인지 각막을 태우는 냄새 때문인지 그 무언가가 나를 몽롱하게 만들기도 흥분시키기도 했다. 그렇기 지독한 초록만 쫓다가 수술이 끝났다. 수술이 끝났다는 신호로 정면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무언가를 강력히 경고라도 하듯.

*

걸어서 다섯층을 올라가자 한여름 열기가 얼굴 위로 확 번져갔다. 우리 집은 재건축이 추진 될 것이라는 소문만 10년 이상 계속 된 오래된 아파트 맨 꼭대기 층이었다. 그러나 숨이 찬 기침을 하며 계단을 올라도 자꾸만 치켜 올릴 안경이 없다는 사실이 즐겁기만 했다. 놀랍게도 수술 후 곧바로 잘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일시적이라고 했다. 잠시 잘 보이다가 마취가 깨고 오늘밤부터 서서히 깊은 통증이 찾아올 것이라고 의사는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내 머리위에 가로등을 하나 새로 박은 듯 모든 것이 한층 밝아진 덕분에 나는 기분 좋게 현관문을 열었다. 집으로 들어서자 엄마가 마룻바닥에 알몸으로 누워있었다. 아니 붙어있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눌어붙었다고 해야 할까. 엄마는 시장 좌판에 놓인 싸구려 문어 같았다. 엄마는 얼마 전 항암치료로 머리가 다 빠졌다. 눈썹이며 다리털 그리고 음모까지 모두 빠진지 오래였다. 온몸으로 삶을 맞는다는 상투적인 말은 아마 저런 거일지도 몰랐다. 바람이 불어도 아무것도 흔들릴 게 없는 상태. 어찌되었든 엄마는 항암치료 시작 후, 곧 떨이로 팔리거나 아니 결국엔 아무도 사가지 않을 것 같은 싸구려 문어가 되어버렸다.
“밥 먹었어?”
이제 막 붙으려 했던 종잇장 두 장을 떼어내듯 엄마의 입이 어렵게 떼어졌다.
“못 먹겠어. 누가 온몸에 떫은 감을 잔뜩 쳐 넣은 것 같아.”
나는 거실 구석의 플라스틱 3단 서랍을 열어보았다. 엄마의 구토억제제는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토하지 않았어? 원래 항암치료 하면 다 토한다던데. 엄마는 아닌가 보네. 다행이다.”
 엄마는 동의한다는 듯 마른입을 또다시 벌렸다. 아니 어쩌면 입이 붙어 버릴까봐 자꾸 떼어주려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런 엄마를 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고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침대에 누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엄마는 왜 구토를 하지 않을까. 다른 항암치료 환자들은 모두 다 끔찍하게 많이 한다는 그것을. 구토는 인간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몸짓이다. 거부의 최상급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걸 하지 않았다. 구토를 했다면 엄마는 좀 더 완벽한 암환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내속을 울렁거리게 했다. 그런 어슴푸레한 생각 속에서 잠을 청했다. 눈이 점점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선명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쯤 잤을까. 잠에서 깬 건 전화벨 소리 때문이었다. 아니 예민해질 때로 예민해진 엄마가 그 전화벨 소리에 못 이겨 나를 흔들어 깨웠다.
“받아, 시끄러워.”
눈을 감은 채 전화를 받았다. A였다. 내가 속한 시(詩)동아리의 회장을 맡고 있는 한 학년 후배였다. A는 내게 뜻밖의 부탁을 해왔다.
 “선배, 시 하나만 주세요. 우리 동아리 이번에 내는 정기집 말이에요. 지면이 남았어요. 하나 해주실 거죠?”
 “4학년들은 빠지기로 했잖아?”
 “딱 한 편만요 선배. 이번 기수 애들 시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정기집 내기가 다 민망할 정도에요. 좀 도와주세요.”
 앞을 볼 수도 없는데 며칠 내로 시를 보내겠노라고 약속했다. 며칠 눈을 감고 할 일도 없었는데 오히려 잘 되었다 싶었다. 시를 구상하며 시간을 보내면 되었다. 전화를 끊자 옆에서 듣고 있던 엄마가 전화를 받아서 내려놓았다.
 “속은 괜찮아? 안 토했어?”
 “또 시야?”
엄마는 내가 시를 쓰는 일에 끔찍하게 집착했다. 대학 입학 후 처음 시 동아리에 들어가던 날, 오래전 이혼 한 아버지에게서만 볼 수 있었던 눈빛을 엄마에게서 처음 느꼈다. 졸업반이라 시 동아리에서 더 이상 활동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말에 가장 기뻐한 건 다름 아닌 엄마였다. 시는 돈이 되지 않는데 딸이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보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그런 말들을 그토록 숭상한다는 것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선사시대 부족민 보듯 보았다. 엄마에게 내 시는 배설된 글자에 불과했다. 사실, 엄마의 나이와 학력은 그랬다. 액션영화와 영국드라마의 전개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자막 읽는 것이 버거워 더빙된 것이 아니면 외화는 보지 않았다. 같은 의미의 대사를 여러 번 줄줄이 설명하는 아침드라마나 대사를 하기 전 음악이 먼저 분위기를 충분히 잡아주는 저녁 여덟시의 일일드라마 정도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내 시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젊음과 철없음이 수시로 배설하는 일시적인 메모에 불과한 듯 보였다.    
 
*

잠이 깼다. 며칠 간 집은 심해처럼 고요했다. 이 집에 사는 단 두 사람. 엄마와 나는 며칠간 온종일 잠만 잤다. 엄마는 항암제 약기운이 극에 달했는지 잠자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일이라고 했다. 나 또한 눈의 통증이 갈수록 극심해졌다. 엄마처럼 잠자는 일이 가장 덜 아픈 방법이었다. 더듬더듬 이곳저곳을 더듬어 방을 나가 거실로 갔다. 밤이었지만 집은 푹푹 쪘다. 이 계절이면 어느 집에나 찾아오는 그런 열대야만은 아니었다. 재건축 소문이 유령처럼 십년 째 떠도는 이 낡은 아파트의 맨 위층은 더 더웠다. 옥상은 낮 동안 빨아들인 열기를 밤마다 꼭대기 층으로 내려 보냈다. 이 아파트에서 가장 높은 층인데 이상하게 이 세상에서 가장 심해 같은 우리 집으로. 여기저기 더듬거리다가 너무 답답해 눈을 뜨니 두 눈에서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의사가 말하던 가장 고통스러울 거라던 그 날이 아마 오늘인가 보다. 거실에서는 엄마가 텔레비전만 켜고 컴컴한 어둠 사이에 위태롭게 앉아있었다. 엄마는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의 <심해의 생물들>편을 보고 있었다. 낯설어야 하지만 또 그리 낯설지도 않은 남자의 영어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와 거실을 뒹굴고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알몸으로 텔레비전을 넋 놓고 쳐다봤다. 텔레비전을 보는 집중력은 꼭 ‘우연치 않게 이곳으로 나왔는데 어떻게 해야 저 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지?’ 따위를 고민하는 한 마리의 문어 같았다. 엄마의 주변으론 텅 빈 멸균 두유 서너 팩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엄마는 두유 한 팩을 마저 쭉쭉 빨아먹으며 텔레비전으로 빨려 들어갈 듯 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내 눈에선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서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 거 안 보잖아. 영어. 자막보기 힘들다고.”
“이 새벽에 볼게 없어. 이 시간에 다른 채널은 홀딱 벗은 것들끼리 빨고 부비는 것밖에 없어 죄다. 그림만 보고 있어. 재밌다.”
“두유는 왜 그렇게 한꺼번에 먹어. 토하면 어쩌려고.”
나는 살짝 눈을 떠서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형식적인 걱정에 텔레비전에 고정되어있던 시선을 돌려 나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살아야 돼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심해의 파란 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빛을 냈다. 무척이나 당연한 그녀의 말이 나는 왠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눈이 아픈 척 그녀의 시선을 피해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서둘러 방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눈으로 들어온 텔레비전의 파란빛 때문이었을까 왠지 섬뜩하게 느껴진 그녀의 한마디 때문이었을까. 눈을 감아도 눈물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눈물을 흘린 적은 딱 두 번째이다. 엄마가 암 선고를 받은 날로부터 한 십오일 정도의 시간 동안이었다. 엄마의 일생은 불쌍했다. 더불어 나의 일생도 불쌍했었다. 차라리 술을 먹었다면 그럴듯하기라도 했을 텐데, 술을 먹지도 않고 맨 정신으로 주먹을 휘두르던 아버지로부터 십년을 시달린 후에야 내가 열다섯 되던 해에 엄마는 이혼을 했다. 이혼을 하고 두 달이나 지났을까. 자궁에 내내 자리 잡고 있던 혹이 갑자기 커져 엄마는 자궁을 떼어냈다. 몸을 추스르자 곧이어 생계를 책임졌다. 더불어 내 대학 학비까지 책임져야 했다. 그녀는 자신이 맞고 산 세월은 다 자신이 부족하게 배워서 그런 것이라 탓했다.
“왜 그런 말들 하잖아. 아는 만큼 보인다. 세상엔 얼마나 거짓들이 많은데. 뭘 알아야 세상의 진짜배기들을 알아보는 거야.”
그녀는 대형마트에서 일을 하고 몸이 고단한 밤이면 내게 이 말을 반복했다. 그녀는 종일 서서 계산대 업무를 했다. 그녀의 오른쪽에 가져다 놓는 물건들을 바코드를 찍어 왼쪽으로 옮기며, 그렇게 온종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시계추처럼 일했다. 그리고 약 한달 전 유방암 선고를 받았다. 1기였다. 1기의 생존율은 무려 97%였다. 그러나 암(癌)이라는 그 한 글자의 무게가 무섭게 나를 짓눌렀다. 엄마의 일생이 불쌍했고, 앞으로 겪을 고난이 두려웠고, 나머지 3%가 너무 크게 느껴졌었다. 엄마가 내게 전화해 울면서 암이라고 이야기 한 날, 나는 시 동아리 선후배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모든 사실을 광고하듯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날부터 약 보름 정도. 난 바지지퍼가 잘 안 올라가서 눈물이 났고, 등이 가려워서 서러웠고, 바람이 불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엄마가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는 날까지 나는 그녀를 누구보다 극진히 간호했다. 그리고 나는 라식수술을 하고 생각에 깊이 잠기는 시간이 많아지자 문득 깨닫게 되었다. 일전에 내가 고백했다가 거절당했던 D선배가 술자리에서 우는 나를 감싸주었고, 처음으로 집까지 데려다주었으며 고백 이후 애써 나의 눈을 피하던 그의 눈이 제법 따뜻하게 바뀌었음을. 홀어머니를 모시며 저 혼자 무언가 감당하려는 아이. 그 아이의 버거움이 가끔 넘쳐흐르지만 기특하게도 버텨내는 아이. 그렇게 나를 보고 있음을.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내 역할이 마음에 들었고, 어느새 그 역할에 몰입하고 있었다.       
감정 없는 눈물이 새벽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누워서 아무리 뒤척여도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종일 눈을 감고 있다 보니 낮에 너무 많이 잔 탓이리라. 잠들지 못하니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거실에 나가 서랍을 열어 진통제를 찾았다. 슬쩍 눈을 떴다. 무언가 집어 들었을 땐 엄마가 병원에서 받아온 구토억제제가 먼저 손에 집혔다. 아직도 구토억제제 약통을 뜯지도 않았다. 엄마는 항암치료 환자들이 흔하게 겪는다는 구토조차 없는 모양이다. 엄마는 거실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나는 진통제를 꺼내 한 알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갔다. 잠을 청해보기 위해 다시 누웠으나 눈을 죄는 고통이 선명해질 뿐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잠들기를 포기하고 시를 생각하기로 했다. 무슨 시를 써야할까.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당장 앞이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배짱으로 써주겠다고 했는지도 이젠 모르겠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은채로 집중했다. 눈을 감은채로 보이는 건 검정밖에 없었다. 검정. 그 검정을 확대하자 상복(喪服)이 나타났다. 검은색 상복. 그 옷을 입은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나는 장례식장에 있다. 영정 앞에 덩그러니 앉아있다. 하얀 리본을 머리에 꼽고 두 무릎을 가지런히 감싸 안고 멍하니 앉아있다. 통곡하는 것은 너무 과하고 그쯤이 딱 좋다. 이 사실을 너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듯 멍하니 앉아있는 정도. 나는 영정사진을 한 번 쳐다보았다. 엄마였다. 엄마가 3%의 문을 통과한 것이다. 나는 영정사진을 보고 통곡하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되도록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구석은 특별한 공간이다. 바로 눈에 띄진 않지만 쉽게 눈에 띄는 곳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래 전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가 장례식장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열다섯 이후 본적 없는 아버지의 얼굴이라 그의 늙어버린 얼굴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상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지저분한 중년의 남자가 가장 적당한 것 같다. 평소 술을 입에도 대지 않고 자기 일이라면 매사 부지런을 떨던 그에게 사실 좀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필요한 순간이었으므로 아버지를 그렇게 들어와야만 했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초라한 행색의 아버지를 노려본다. 무슨 염치로 여기까지 왔는지, 좋은 구경하러 왔느냐고 따져 물을 차례인 듯 했지만 모든 강렬함은 단답형에 있었다. 나는 양팔을 벌려 그를 막으며 말한다.
“가”
그는 나를 피해 엄마의 영정 앞으로 가려고 한다.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그 앞을 막아선다. 아버지 뒤로 D선배가 보인다. 나는 어서 D선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아버지와 눈을 맞춘다. 나는 전에 없이 아버지를 매섭게 노려본다. 아버지가 감히 주제 넘는다는 듯 내 뺨을 때린다. 나는 옆으로 힘없이 스러진다. 말쑥한 검은 양복 차림의 D선배가 뛰어 들어와 나를 일으킨다. 일순간 장례식장의 사람들이 아버지를 둘러싼다. 아버지는 난동을 피우려하고 사람들은 나의 눈치를 보며 그를 데리고 장례식장을 나간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내게 집중된다. 저 아인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가 엄마랑 둘이 잘 살아갈 때 쯤 암으로 엄마를 잃은 아이라니.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여대생이었던 나는 그렇게 꾸며지고 있다. D선배가 이제 막 끓으려는 물처럼 우는 나를 보듬어준다. 나는 그 안에서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려 마침내 펄펄 끓는다. D선배의 검정 양복과 내 검정 상복이 하나로 합쳐진다. 합쳐진 검정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다. 그렇게 나는 잠이 들었다.

*

분명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나는 뜻밖의 소리에 놀라 부엌으로 갔다. 엄마는 죽을 먹고 있었다. 엄마의 항암주사 기운이 막바지에 이른 듯했다. 아니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엄마는 의심할 여지없는 97%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었다. 나의 눈도 제법 회복이 되었는지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눈을 떴다. 그제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게 길어졌다. 연필이, 젓가락이, 빨대가, 사람들의 키가, 방문이 모두 길어졌다. 내가 여태껏 제대로 본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모든 것의 크기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사물은 생각보다 크고 밝았다. 노랗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누랬으며 하얗다고 생각한 것들이 실은 희끄무레 했다. 그리고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어제보다 생기가 돋은 얼굴로 흰죽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얼마 전 파란 빛의 얼굴로  ‘살아야 돼서’라고 한 말이 내 온몸을 차갑게 감싸 안았다. 어쩐지 그 말이 끔찍해졌다. 난시였을 적만 해도 불쌍하고 애틋한 존재로 보였던 엄마였다. 그렇게 노랗고 하얗게 보였던 엄마가 이제는 누렇고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더불어 이대로 아픈 엄마를 내 액세서리로 쓸 수 있는 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아직 눈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다시 방안으로 들어왔다. 안약을 챙기며 문득 내 손등을 보았다. 손등의 털 하나하나도 더 잘 보였다. 손등을 가로질러 가는 털들이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문득 내가 어린 짐승처럼 느껴졌다. 아니, 어리지도 않은 그냥 짐승일지도 몰랐다.
이런저런 생각을 지우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A에게 약속한 시간이 바로 오늘 자정까지였다. 안과 예약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결국 나는 온종일 검정만 생각하다 아무 시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결국 일전에 시를 써서 저장해둔 파일을 뒤져보았다. 아주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망신당하지 않을 정도의 시라고 판단한 나는 A에게 시를 메일로 보냈다. 엄마는 제법 기운이 나는지 내 방에 들어와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보다 나가기도 했다. 엄마의 옷자락에서 역겨운 냄새가 났다. 주방에서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고 칼질하는 소리가 나더니 어느새 엄마는 음식냄새를 묻혀왔다. 내 속이 울렁거렸다. 기어코 엄마는 항암주사 기운이 다 깰 때까지 토하지도 않았다. 나는 A에게 시를 보내고 안과를 간다는 핑계로 예정보다 좀 더 일찍 집을 나섰다. 실은 심해처럼 고요했던 그 집이 서서히 깨어나는 게 견딜 수가 없었다.
집이 싫어서 무작정 집을 나섰다가 얼마 안 되어 집으로 돌아간 건 다시 걸려온 A의 전화 때문이었다.
“선배, 시 잘 받았어요. 선배들 졸업하시면 우리 정기집은 어떻게 내나 몰라요.”
“응. 네가 고생 많구나.”
“고생은요 무슨. 출판 기념회 때 선배랑 D선배 두 분은 꼭 모실게요. 첫 번째로.”
“D선배? D선배에게도 원고를 부탁했었니?”
“네. D선배도 작품 좋던데요.”
“A야. 나 시 수정 좀 해도 될까. 아니 아예 다른 거 보내줄게. 다시 생각해 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방에 들어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급하게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낡은 노트북이 부팅되는 동안 전화를 들어 안과 예약을 취소했다. 차분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또 검정이다. 그러면 또, 그것이 생각났다. 결국 상상의 끄트머리엔 언제나 D선배를 비롯한 사람들의 수백 개의 눈이었다. 나를 안타깝게 보는 눈. 나를 약하지만 또 강한 아이로 보는 눈. 내 스스로 벗어버리고 싶지 않은 그런 그들의 눈, 눈, 눈들.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차분히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기다렸다는 듯 시가 나왔다. 나를 위협하는 듯 컴퓨터의 강한 발광發光에도 눈은 아프지 않았다. 내 눈은 완전한 회복단계에 들어서서 모든 것을 좀 더 분명하게 보고 있었다. 나는 산문시 한편을 다시 썼다. 막 시를 다 썼을 때 이 시를 순간적으로 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라식수술을 하고 며칠간 온종일 눈물을 흘리며 상상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음을 깨닫는데 오래 거리지 않았다. 시의 제목은‘문어여자’였다.        
이제부터 우리 집 변기에 청크린 넣지 말아요. 변기물이 파라니 우리 집 문어가 자꾸 머언 바다로 나가려 해요. 항암제가 새까맣게 태워버린 속이 먹물처럼 변기로 쏟아져요. 문어는 변기로 얼굴을 들이밀어요. 문어머리가 빨려 들어가요. 뒤통수에 파란 핏줄이 서요. 곧 넘쳐흐를 듯 힘을 줘 봐도. 저기 변기 너머에서 시퍼런 바다가, 거대한 죽음의 파도가 엄마를 잡아당기고 있어요. 변기의 소용돌이가 멈추지 않아요. 문어는 벌써 해풍에 취했는지 저기 저 바다가 자기를 부르고 있다고 주문처럼 중얼거려요. 이곳에 나 홀로 남기고 자기 혼자 곧, 머언 바다로 나아간대요.
다시 읽어보자 시는 감정의 과잉 상태였다. 아니 시라고 하기에 힘든 상태이기도 했다. 값싼 포르노들이 상품으로서 가치를 위해 화려한 시각, 선연한 청각 등을 동반하듯 내 시도 내가 원하는 어떠한 가치를 위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알레고리만 있을 뿐 시라기 보다는 참아왔던 나의 바람과 속내가 빠르게 쏟아진 말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수정하지 않기로 했다. 내게는 지금 그런‘과잉’이 필요했다.

*

엄마는 구지 나를 따라왔다. 두건으로 머리를 덮고 그 위에 야구 모자를 눌러 써 자신이 암환자라는 것을 감추려고 했지만 그것이 가장 눈에 띄는 암환자의 모습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암 보험료로 수술한 딸의 눈 상태를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또 다시 시력검사 기계 렌즈에 눈을 가져다 댔다. 엄마는 내 가방과 핸드폰을 받아들고 그 옆에 앉아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간호사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열기구를 찾았다. 실은 얼마 전부터 열기구가 무척 보고 싶었었다. 여전히 초록색 정삼각형 산 위로 두둥실 떠 있는 저기 저 열기구 하나가.
“어때요? 괜찮나요?”
내가 렌즈에 눈을 가져다 대자마자 엄마의 호들갑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렌즈 속 열기구에 집중했다. 수술 전보다 열기구는 더 선명하고 커져 있었다.
“눈 깜빡 해보세요.”
눈을 감았다 떴다. 열기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깜빡.”
눈을 감았다 떴다. 열기구가 지상으로 내려왔다.
“다시 깜빡.”
눈을 감았다 떴다. 엄마와 내가 저 열기구 앞에 서 있다.
“또 한 번 깜빡.”
눈을 감았다 떴다. 나는 엄마를 데리고 열기구에 올라탔다. 엄마는 거대한 초록색 정삼각형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린 아이를 달래듯 엄마를 태우며 말했다. 엄마, 진실을 보러가지 않을래. 엄마가 매일 밤 마트에서 돌아와 세탁기 앞에 주저앉아 말했잖아. 왜 냄새나는 양말을 세탁기로 집어던지며 말하던 그 진짜배기 말이야. 색종이 오려논 것 같은 초록색 삼각형 저 거짓 산 뒤에 뭐가 있는지 엄만 궁금하지 않아? 왜 우린 그 동안 한 번도 이 산 뒤에 무엇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았던 걸까? 엄마도 저게 산이 아니라는 거, 실은 알고 있잖아. 엄마가 그렇게 바라던 진짜배기를 보러 가자고. 나는 곤란해 하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다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한 번 보여주곤 바로 열기구에 불을 붙였다. 이곳은 오래된 아파트인 우리 집처럼 덥지도 않았다. 오히려 서늘하기까지 해서 열기구에 붙은 불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리 모녀는 마침내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각막을 많이 깎아서 통증이 심하셨을 텐데. 괜찮으셨나요?”
간호사의‘통증’이라는 말이 우리 모녀가 타고 있는 열기구의 불을 더 강하게 지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렌즈 속 열기구를 띄우며 말했다.
“그냥 버텼어요. 이 순간만 참으면 더 잘 볼 수 있는 거니까.”
그 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산봉우리쯤에 떠있었다. 그러니까 경계였다. 저쪽은 가짜. 우리가 가는 이쪽은 진짜. 이제부터 엄마를 데리고 가서 진짜를 보리라. 산봉우리를 넘어 산의 반대편으로 가자 초록색 정삼각형 산의 뒤편이 보였다. 산이 아니었다. 그저 액자 같은 것이었다. 초록색 정삼각형이 넘어지지 않도록 뒤편에 작대기를 받쳐놓은 장식에 불과했다. 이 거짓 산을 넘어 더 나아가 보기로 했다. 온몸이 비쩍 말라 성질만 남은 겨울이, 깨진 아스팔트들이 이빨을 내밀고 있는 평야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의외로 아무리 가보아도 무엇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새하얀 땅일 뿐이었다.
“이제 좀 잘 보이니?”
기다리다 못한 엄마가 검사가 다 끝나기도 전에 자꾸 잘 보인다는 대답을 듣고 싶어 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직 열기구에 집중했다. 새하얀 땅 이외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저 열기구를 타고 가는 우리 두 사람에게 집중했다.
“잘 보이냐고.”
때마침 하얀 땅이 이어지다가 땅이 아니라 하얀 포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열기구에 속력을 올렸다. 바다였다. 드디어 내 검사과정을 보고 있는 엄마에게 말할 수 있었다.
“응. 안 보이던 것까지 다 보여.”
사실 의외였다. 건조하고 사나운 것들이 아닌 이 거대한 바다라니. 우리가 지나온 저 거짓 산 뒤에는 하얀 포말이 아름답게 부서지는 거대한 바다가 있었다. 초록색 정삼각형이 숨겨놓고자 했던 것은 이 거대한 바다였다. 우리는 조금 더 바다로 나아가보기로 했다. 사실 더 이상 나아갈 곳도 없었다. 내가 궁금해 하던 이 세계의 끝은 바다다. 그래도 더 먼 바다로 나아가보기로 했다. 신이 난 나와 달리 엄마는 두려움에 잔뜩 차있었다.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었다. 엄마가 쓰고 있던 야구 모자가 날아갔고 두건도 날아가 버렸다. 머리칼도 눈썹도 그 어떤 털 한 올조차 없어, 세찬 바람이 불고 잇는지 증명할 길이 없는 엄마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엄마는 연신 숨을 거칠게 쉬었고 나는 왠지 모르게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핸드폰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잠깐 열기구에서 시선을 놓치고 말았다.
“엄마, 내 전화지? 누구야?”
“D선배.”
“움직이시면 안 돼요. 아직 검사 다 안 끝났는데.”
“내가 받아서 이따 전화하라고 할게.”
“안 돼. 싫어.”
“다시 열기구에 보세요.”
우선 간호사 말대로 다시 열기구를 찾았다. 침착해야 했다. 이곳은 D선배는 알지 못하는 바다였으니까.
“엄마, 그냥 내 귀에 가져다 줘.”
나는 바다 한가운데 열기구에 떠있었고, D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D선배의 목소리가 바다 한가운데서 울려 퍼졌다.
“원고 교정보고 있었어. 우리 정기집. 그냥 보다가 네 생각이 나서.”
“아 그러셨구나.”
나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러면서도 파도 소리가 혹여나 새어들어 가기라도 할까봐 내내 걱정스러웠다.
“어디니?”
“그냥 답답해서 잠깐 나왔어요.”
“이따 저녁에 나올래? 한두 시간 정도면 교정 작업 끝날 거 같은데. 저녁이나 같이 먹자. 맛있는 거 사줄게. 내가 그쪽으로 갈까?”
“아뇨. 제가 선배 계신 곳으로 갈게요.”

*

우리는 여전히 바다 위에 열기구를 타고 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곳에서 진짜의 모든 실체를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바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야구 모자와 두건을 가져간 것으로 모자라 바닷바람이 엄마의 멱살을 잡았다. 항암치료를 하며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해 그세 헐렁해진 티셔츠가 몸에 꼭 맞지 않아 힘없이 펄럭거렸다. 나는 엄마를 열기구 벽에 몰아세우고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라식수술은 아주 잘 됐대. 그런데 말이지. 부작용이 생겼대. 보이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보이는 거야. 이를테면 이런 거야. 엄마는 그냥 엄마였는데 이젠 자꾸 문어처럼 보이는 거지. 차라리 그거뿐이라면 모르는 척 하고 살아갈 텐데. 정말 미치겠는 건 뭔 줄 알아. 다른 사람들의 눈이 그들의 눈이 너무나 잘 보여. 아주 선명하게 보여.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말이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나 지금 D선배를 만나러 가야해.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지 혹시 엄만 알아? 바로 저-쪽. 여기가 아니라. 저기 초록색 정삼각형 안쪽에서. 그 산을 바라보면서 만나기로 했지. 모두가 그게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긴 알지만 산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어. 자, 엄마 이제 눈을 감아봐. 해풍이 느껴져? 엄마는 이제부터 이 해풍에 취하는 거야. 저기 저 바다가 엄마를 부르고 있는 게 느껴지냐고. 엄마는 이 열기구에 날 홀로 남기고 엄마 혼자 저 머언 바다로 나아가는 거야. 알겠지.
나는 열기구의 방향을 돌렸다. 혼자 탄 열기구가 훨씬 가벼워져 몰기가 수월해졌다. 이윽고 멀리 초록색 두 산이 보였다. 잠시 열기구의 속력을 늦췄다. 주머니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냈다. 나는 엄마를 입고, 엄마를 신고, 엄마를 머리에 꼽고, 엄마를 바르며 나를 단장했다. 그 상태로 초록색 산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저기 산 아래에 D선배의 얼굴이 보였다.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4 노 은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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