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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문화상 대상-소설] 순례자
  • 김종성(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착학과4 )
  • 승인 2014.12.04 21:19
  • 호수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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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앞질러 온 나는 수레를 멈춰 세웠다. 수레 위엔 갈색 천이 덮여있었고, 갈색 천 위엔 먼지가 덮여있었다. 까슬까슬한 천을 들어 올려 사방에 기스가 난 기타를 꺼냈다. 손톱으로 쇠줄 밑을 쓱 긁자 먼지가 손톱에 밀려 헤드 쪽 지판에서 뭉쳐졌다. 바퀴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을 연주했다. 서너 곡쯤 완주한 후 반주에 노래까지 곁들이다가, 잠시 멈춰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가끔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들 말곤 아무도 없었다. 도로는 상하좌우로 산을 따라 구불거렸다. 
태양의 방향을 눈으로 좇기도 하고, 공복감을 헤아려 대강의 시간을 짐작해 보기도 했다. 얼추 시간이 다 된 것 같았다. 나는 기타를 수레에 기대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만치에서 그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세 걸음을 걸었다. 몸을 바닥으로 던지듯 절을 했다. 다시 세 걸음을 걸었다. 다시 몸을 던졌다. 상이 제대로 맺히지 않을 만큼 그는 먼 거리에 있었다. 나는 수레를 덮은 천을 완전히 걷어 내어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순례자와 동행하는 수레꾼으로써 사람을 죽여 본 사람이 필요하다. 누나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사람을 죽여 본 사람이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누나였기에 까닭 없이 날카롭게 대꾸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나? 플랜카드도 하나 걸어. 누나의 부탁으로 출소 직후 또다시 살인을 저지른 남성. 이 남자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누나는 왜 그렇게 삐딱하냐며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설명을 이었다.
“너는 그냥 수레를 끌어주고 따라다니기만 하면 돼. 별 탈이 없을 정도만 신경 써주고, 밥 시간 되면 밥 차려주고, 어려운 건 없을 거야.”
“밑 닦아 달라고 엉덩이 내밀면?”
그 말을 듣고 누나는 또 설교를 시작했다. 내가 해왔던 생각, 행동, 말들에 대해 지적했다. 누나는 자기가 하는 말에 스스로 도취된 것처럼 보였다. 나는 누나와 말을 섞는 게 싫었다. 깊은 대화를 해본 적이 있었던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를 함부로 진단한다는 게 우습게 느껴졌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누나가 하는 말을 들었다. 평소에 누나는 평소에 교도소 갔다 온 동생이 있다는 걸 들킬까 봐 전전긍긍했다.
누나는 한참 그 일에 대해서 설명했다. 나는 확답을 주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냐는 누나의 목소리가 닫히는 현관문 틈새로 들려왔다. 아파트 단지를 나오며 생각했다. 그런 일에는 사람을 죽이는데, 아니 적어도 폭력을 일삼는 걸 꺼리지 않는 사람이 어울리지 않을까. 누군가의 얼굴을 뭉개놓는다거나 상대가 용서를 빌 때까지 고문하는 상상이라면 해본 적도 있지만, 그것은 그저 상상일 뿐이었다. 한 번의 살인도 우발적이었을 뿐 결코 몸에 밴 폭력성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일이 내게 적합한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일에 대한 보수는 컸고 그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다. 
 
누나를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그는 누나의 대학교 동기였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그렇게 친하게 지낸 편은 아니라 그의 연락이 뜬금없게 느껴졌다고 했다. 어떻게 번호를 알아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가 간단한 인사를 건네는 동안 누나는 전화를 끊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자기 아내와 아들을 죽인 후 주기적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았던 그의 과거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순례를 떠날 것이라고 했다. 혼자 하고 싶지만, 라싸를 향하는 순례에는 그게 불가능하다. 수레꾼이 필요하다. 라고 그는 말했다. 나를 수레꾼으로 기용하고 싶단 게 요지였다. 이유는, 내가 살인을 저질러봤기 때문이었다. 살인자가 순례자가 되고 또 다른 살인자가 수레꾼이 된다니, 아귀가 안 맞는 퍼즐을 억지로 끼운 느낌이었다. 
공항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반갑습니다. 그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가 신경질적으로 생겼거나 혹은 호리호리하게 말랐을 거라고 짐작했었다. 어느 쪽으로든 양극단에 치우쳐 있는 인간이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편견 같은 것이었다. 막상 만나고 보니 그는 평범한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얼굴, 조용한 목소리에 사회생활을 하며 익혔을 적당한 예의 같은 것. 거리를 거닐다 마주치더라도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말수가 적었다. 낯섦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설명은 들으셨죠? 그는 끝을 흐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끝까지 동행하지 않아도 약속드린 돈은 전부 드릴게요. 이쪽에서 준비는 다 해놓았습니다. 우선은 가실까요.
그는 준비된 차로 나를 안내했다. 미리 고용된 듯한 거뭇한 피부의 티베트인이 운전대를 잡았다.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이곳입니다.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나는 순례가 언제쯤 끝나는지 물었다. 그는 기약이 없다고 답했다. 대강의 기간이라도 알려 달라 말하자, 일반적으로 반년은 넘게 소요되는데 자기는 더 오래 걸리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나에겐 어찌 되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육 개월 동안, 아니 육 년을 일해도 벌 수 없을 만한 돈을 그는 약속했다. 불명확한 일정 역시 보수를 생각하면 기꺼웠다. 게다가 한국에 있더라도 갈 곳이라곤 누나의 집밖에 없었다. 나는 그게 가장 싫었다. 돈이 생기면 무엇을 할지 생각하며 창문을 열자 다시 되돌아와야 할 풍경들이 바람과 함께 지나갔다.

나무판자가 그의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하늘을 향해 뻗은 두 손을 합장했다. 또 한 걸음 내디디고, 얼굴 앞에서 합장했다. 또 한 걸음 내디딘 후 배 부근에서 합장했다. 세 번의 걸음과 세 번의 합장을 하고 몸을 던지듯 절을 했다. 이마와 양팔과 양다리가 땅에 닿았다. 일어났다. 다시 걷고, 합장했다. 손을 모을 때마다 나무끼리 부딪쳐 맑은소리를 냈다. 절을 할 때마다 바닥에 끌리는 가죽 앞치마는 닳아진 지 오래였다. 마모된 앞치마의 구멍엔 가죽 조각이 덧대어 있었다.
오체투지. 자신을 최대한 낮추어 하는 절이다. 세 번의 합장은 몸과 마음과 말을 뜻하는데 부처님께 이 세 가지를 받치겠다는 뜻이라고, 또 순례는 모든 티베트 사람들의 숙원이라고 그는 설명했었다. 순례를 하는 동안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모든 욕망을 멀리할 것을 맹세한다고 하였다. 오체투지의 의의를 나는 절반만 받아들였다. 그가 오체투지 중 작은 개미를 온몸으로 짓눌러 죽였을 수도 있다. 절을 하며 동시에 생명을 죽인 것이 된다.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않겠다는 맹세는 거짓이 되는 것이며,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 역시 거짓이 되는 거였다. 세 번째 맹세 역시 지키기 힘든 것이었다. 욕망은 멀리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멀리 둘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살인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반년이 훌쩍 넘게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체투지를 반복해왔다. 가파른 경사도 풀이 무성한 들판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가령 깊은 물이라던가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 나타나면 그는 멈추어 거리를 헤아렸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그 거리만큼의 절을 하고 물이나 장애물을 건넜다. 앞치마와 토시는 순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모두 너덜너덜해졌다. 얼굴엔 때가 꼈고 머리는 기름진 산발이 되었다. 나무 장갑은 닳고 닳아 몇 번이나 새것으로 바꾸었다. 나무 장갑처럼 그의 피부도 닳았다. 땅과 맞닿은 팔꿈치나 무릎엔 물집이 생겼고, 그 안에 다시 이중 물집이 잡혔다가 터지길 반복했다. 이젠 아예 굳은살이 박여서 괜찮아졌지만, 관절까지 상하고 퉁퉁 붓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말끔했던 그의 인상은 어느새 티베트 유목민들의 얼굴처럼 검고 거칠어졌으며 빠르게 늙어버렸다. 하루 종일 그는 멈추지 않았지만 내가 수레를 끌며 두 시간 갈 거리만큼도 전진하지 못했다. 그렇게 이천 킬로미터를 넘게 지나왔다. 육십 개가 넘게 준비한 나무 장갑은 다 닳아서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가 절을 멈추고 일어났다. 태양은 낮고 붉었다. 묘하게 엉킨 먹구름들이 사람의 기를 빼앗는 듯했다. 그는 손에 낀 나무 장갑과 앞치마를 벗어 내려놓았다. 여러 번 가죽을 덧댄 앞치마가 떨어지며 제법 묵직한 소리를 냈다. 그의 이마엔 검은 상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작은 상처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면적이 늘어나며 굳어진 그것은 마치 점 같았다. 그 점은 그가 해온 고행이 한 방울씩 고여 생긴 웅덩이 같았다. 나는 때때로 그 점을 가만히 바라보곤 했다. 그러고 있자면 오히려 거꾸로 점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터덜터덜 걸어와 앉았다. 평소보다 굼뜬 움직임이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례를 시작하면서부터 계속해서 그래 왔다. 그가 감사함을 표하면 나는 묵례로 답했다. 오래 같이 있었지만 정작 주고받은 말은 적었다. 이래저래 과거를 물으며 대화를 하는 것보단 오히려 지금 같은 관계를 서로 편해 했다. 서로의 과거를 물어봤자 좋은 이야기가 나올 리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왼손으로는 밥그릇을, 오른손으로는 숟가락을 들었다. 그는 인상을 일그러트리더니 흐릿한 신음을 흘렸다. 숟가락은 입가까지 올라오지 못한 채 허공에 멈춰 있었다. 나는 밥을 입으로 밀어 넣으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절반 정도로만 손을 올린 상태에서, 그는 결국 상체를 숙여 입을 숟가락으로 가져다 댔다. 괜찮으냐고 묻자 그는 밥을 천천히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마치 해 질 녘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날은 흐렸다. 모래가 실린 바람이 불어오자 눈이 따가웠다. 그가 몸살이 난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티베트의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거센 모래바람은 자주 불었고 하늘도 대체로 흐렸다. 해발 오천 미터를 넘는 미라 산을 넘을 때는 기온이 영하 이십 도 밑으로 떨어졌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지만, 순례 중에 죽는 것은 상서로운 일이라며 그는 오히려 기껍게 산을 오르기도 했었다.
그에게 탈이 생긴다면 내게도 좋을 것이 없었다. 라싸는 멀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걷다 보면 나오겠지, 라는 마음이었으나 라싸가 가까워져 올수록 나는 한국에 돌아갈 날을 자주 그렸다. 기계처럼 일정하고 느린 속도로 절을 하는 그가 답답해졌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몇 번이나 얼렀다.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던 와중에 그가 아픈 듯 보이자 조급함이 일었다.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여윈 상체는 밥그릇을 향해 잔뜩 휘어져 있었다. 시든 꽃처럼, 혹은 물기가 빠져 누렇게 탈색된 벼처럼.

밤이었다. 텐트 속에선 랜턴이 빛났다. 텐트는 어둠 속에 솟은 조그맣고 노란 산이 됐다. 나는 몸으로 텐트의 입구를 밀고 들어왔다. 모포 위에 그를 조심스럽게 눕혀 놓았다. 젖은 옷을 벗기고 내복을 갈아 입혔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에게 물었다. 
“죽이라도 끓여줘요?”
그가 눈을 감은 채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답했다. 
“괜찮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예요.” 
이불을 몇 포 더 가져와 그의 몸을 덮었다. 그의 몸을 결박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아픈 사람을 묶는 것은 가혹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마음을 바꿔 먹었다. 순례를 시작할 때부터 이제까지 별 탈 없이 밤을 지내왔다 해도, 확실한 게 나았다.
“내일은 쉬시죠. 잘못하면 독수리 밥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영광이겠습니다. 순례 도중에 죽은 것이니까요. 하루도 쉬지 않기로 약속했으니 멈추는 일은 없을 겁니다.” 
“누구와요?”
“저 자신 과요.” 
쓸데없는 고집이라고 말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괜히 말을 이어서 휴식을 방해하고 싶진 않았다.
점심을 먹은 후 나는 수레를 끌고 그를 앞질러 갔다. 미리 가서 그를 기다리며 기타를 쳤다. 순례를 떠나기 전, 수레를 끄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길다는 말을 누나에게 들었었다.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다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게 기타였다. 기타를 치며 음들을 따라가다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디에 있는 건지도 전부 잊을 수 있었다. 적어도 음악에 취해있는 그 순간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몸이 없이, 영혼만 빠져나와 높고 낮은 음의 계단을 밟으며 춤을 추는 듯한 기분. 기타를 가져온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잊을 수 있으니까. 그게 과거든, 현실이든, 미래든, 기쁜 일이든 아픈 일이든.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그는 도착하지 않았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오체투지의 속도는 항상 일정했기에, 늦는 법이라곤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더 기다려도 그가 나타나지 않자 나는 기타를 기대 놓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중간쯤 갔을 때 그가 쓰러져 있었다. 흔들어 깨웠지만 흐릿한 신음만 흘릴 뿐이었다. 나는 그를 엎었다. 성인 남성의 몸이라기엔 지나치게 가벼웠다. 걷기 시작했다. 텐트까지 오는 길엔 눈이 내렸다. 
아픈 사람답지 않게 그는 오히려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기타 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듣고 싶은데.”
평소에는 오체투지에 온 정신을 쏟았을 뿐 말이 없던 그였다. 먼저 말을 걸어오는 그런 태도가 나는 익숙지 않았다. 그는 무엇인가를 붙잡으려 허공에 손을 뻗는, 열병에 걸린 어린애 같았다.
 “형편없습니다. 비명소리보다 듣기 싫을 걸요.”
 “언제부터 배웠나요?”
 “교도소에서요. 간수들한테 배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혼자 배웠습니다.”
 “교도소 생활은 힘들지 않던가요?”
 “좋진 않죠. 하루에 한 시간씩 주어졌던 자기 계발 시간만 아니었더라면 자살했을 겁니다. 종일 기타 생각만 하면서 허공에 스트록을 했어요. 자기 계발 시간은 일 분도 낭비하지 않고 기타만 쳤죠. 도피처입니다.”
“도피처라… 저도 배워보고 싶어요.” 
순례도 하나의 도피가 아닙니까.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살인의 죗값으로 살았던 교도소 생활. 도피처인 기타. 가족을 죽인 살인의 죗값으로 받은 마음의 상처. 도피처로 떠난 순례. 무엇이 다를까. 그렇게 신성시하는 순례였다면 아내와 아들을 제 손으로 죽이기 전에 나섰어야 맞는 거 아니었을까. 그가 아니라고 우긴다면 그것은 마음을 속이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발음이 흐리고 알아듣기 어려워 나는 온 신경을 그의 말에 집중했다. 고개를 숙이자 그의 얼굴과 나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점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몸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나치게 아플 일도, 지나치게 즐거울 일도 없을 것 같아요.” 
“일단 푹 쉬고 괜찮아진 다음에 출발하죠.” 
“괜찮습니다. 몸에 통제받기 싫어요. 마음먹은 대로, 제 정신대로 하고 싶습니다. 정신이 죽어버리는 게 저는 제일 괴로워요. 순례가 끝나면 뭘 하실 겁니까?”
“집을 사겠죠. 그리고 기타도 하나 사고요.” 
“들어보고 싶어요. 한 번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어요.”
애초에 나에게 질문한 이유가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서였다는 듯,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순례가 무사히 끝나면 저는 라마가 될 겁니다.”
라마가 된다고 해서 한 번 저지른 살인을 되돌릴 순 없을 텐데. 안고 가야 할 마음의 짐일 뿐. 굳이 많은 재산을 버리고 라마가 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어쨌거나 나는 돈을 받아 한국으로 가고 그는 라마가 되는 것으로 이 여정이 끝나면 그걸로 족했다.

눈을 떴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나 추위 때문은 아니었다. 순간 허벅지가 벌에 쏘인 듯 따끔했기 때문이었다. 곧 허벅지 속은 불에 지져지는 듯 뜨거워졌다. 거의 동시에 굳은살이 잔뜩 박인 두 손이 내 목을 움켜쥐었다. 목뼈를 부러트릴 기세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목을 움켜쥔 손이 제힘을 못 이겨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목에 졸려 죽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었다. 멀쩡한 두 팔과 두 다리를 놓아두고 왜 상대의 손만 잡고 있다가 숨을 멈추는 것인지. 하지만 그게 지극히도 사실적인 장면이었다는 것을 그 순간에 깨달았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자꾸만 기침이 나오려는데 조여진 목구멍 때문에 캑캑거리는 소리도 안 나왔다. 간신히 다리를 들어오려 상대를 발로 걷어찼다. 상대가 뒤로 밀려나며 텐트를 무너트렸다. 나는 기침을 하며 허벅지에 꽂힌 칼을 봤다. 이를 악물고 칼을 빼냈다. 피가 바지를 적셨다. 고통의 크기만큼 분한 마음이 들었다. 몸을 덮은 흰 텐트를 칼로 아무렇게나 찢었다. 전에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사람을 죽였던 순간이. 
칼에 찔린 다리에 힘이 안 실렸다. 나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고개를 드는데 동시에 주먹이 날아와 얼굴을 때렸다. 나는 엎어지면서 어떻게 해서든 상대를 때려눕힐 거라 다짐했다. 화가 들끓었지만 오히려 머리는 이성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일어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상대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다시 목을 조르려는 상대의 팔뚝. 거기에 칼을 꽂았다. 곧장 멱살을 잡아 엎어트린 채 상대의 배 위에 올라탔다. 몇 번이고 주먹을 휘둘렀다. 무릎에 짓눌린 상대의 양팔이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썼지만, 주먹에 맞을 때마다 움직임은 잦아들었다. 곧 완전히 멈추었다. 나는 상대를 다시 묶으면서 분명하게 깨달았다. 왜 굳이 수레꾼으로 살인자가 필요했던 것인지를. 순례를 시작할 때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그럴 일은 없겠습니다만 아주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를 죽여도 좋습니다. 정당방위이니 당신에겐 아무런 해가 없을 거예요. 미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방어행위니까요.”그는 다시 병이 재발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것 같다. 다시 몸이 정신의 통제를 벗어난다면, 정말로 죽는 편이 낫겠단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가족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순례를 하는 동안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모든 욕망을 멀리할 것이라는 이천 킬로미터 동안의 맹세. 그것은 모두 헛것이었다. 오체투지를 하다가 몸이 닳고 닳아, 결국 살갗이 한 움큼도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비로소 그의 바람대로 몸에 통제받지 않을 때가 된다면, 거기서부터 온전한 순례를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난 생각했다. 그쯤 돼야 세 가지 맹세를 능히 지킬 수 있을 테니까.  

그는 퉁퉁 부은 얼굴로 죄송하다며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렸다. 자신의 진심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면 팔이라도 하나 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초에 충분한 경고를 듣고 시작한 일이라 칼에 찔린 허벅지라거나, 그에게 맞은 얼굴을 들이밀며 책임을 따로 묻는 것도 곤란한 일이었다.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나에게 용서를 빌며 말했다.
“저는 가족을 죽였습니다. 그 날에 저는 꿈을 꾸었어요. 그 꿈속에서…”
그는 긴 얘기를 시작했다.
꿈속에서 그의 아내와 아들은 목이 졸려 죽었다. 그는 하얗게 돌아가는 아내의 눈동자를 보며 잠에서 깼다. 식은땀을 흘리며 옆을 보았을 때, 아내는 침대 위에서 혀를 빼물고 죽어 있었다. 시신은 따뜻했다. 미처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아들의 방으로 가 보았다. 아들도 마찬가지, 목이 졸리면서 새어 나왔던 눈물과 침이 마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는 병원과 경찰서에 전화할 생각도 못 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미 심장이 멈춘 시신에게 인공호흡을 했다. 시신의 입술이 점점 차가워짐에 따라 그는 조금씩 현실로 돌아왔고,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다.
그는 가해자의 위치로 법정에 섰고 동시에 정신과에 다니며 주기적인 상담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우울증과 거식증과 대인기피증을 번갈아 앓았다. 재판 중, 그는 자신이 살인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살인은 꿈속에서 이루어진 행위였는데 누가 꿈을 조종할 수 있느냐고. 그게 꿈인지도 몰랐고 그 속에선 자신의 존재조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데 이것이 과연 살인이냐고. 꿈속에서 이루어진 일까지 처벌해야 한다면 범법자가 아닌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결국 그는 풀려났다. 하지만 자신이 했던 변호의 모순을 알고 있었다. 꿈은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꿈속의 살인은 현실의 살인으로 이어졌기에, 꿈속의 자신도 현실의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는 서로 얼굴만 봐도 으르렁거리는 아내와 자신의 바람을 계속 거스르는 아들을 증오했다. 하지만 동시에 가족을 위해선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심정 역시 진심이었다. 그래서 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국 무죄로 판명 났지만 그렇다고 홀가분해진 것은 아니었다. 아내와 아들의 죽음이 머릿속에서 계속 복기 됐다. 그 날 이후 삼 년 동안 그는 몽유병에 시달리진 않았다. 하지만 뜬 눈으로 계속 그 날을 사는 듯한 심정이었다. 정신과 치료가 끝나고 그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겉으론 멀쩡해 보였지만 그는 자살하는 상상을 자주 했다. 처음에는 충동적이었는데 결국엔 그마저도 만성적으로 변했다.
집에 가서 텔레비전을 보고, 밥을 먹은 다음에, 목을 매면… 시간이 딱 맞는다. 아니다. 옆집하고 인사도 하고, 밥은 비벼 먹고 싶다. 아니, 귀찮으니까 그냥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은 없겠다. 그리고 러닝머신을 좀 뛰자. 시간이 딱 맞는다. 그다음에 뛰어내리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을 매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라싸를 향하는 순례자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는 눈물을 참는 일에 능숙했지만 그 순간엔 마치 병든 고양이처럼 울었다.
삼 년이란 시간이 그에게 완치의 확신을 주었기에 순례 또한 결심할 수 있었던 거였다. 비록 만약을 대비하긴 했으나 그저 예방 접종쯤으로 여겼을 뿐이었다. 계속되는 고행으로 자신을 다스리다 보면 스스로가 맑고 선명한 인간으로 거듭날 거로 생각했었지만, 새벽. 그는 다시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난투극을 벌였다. 잠에서 깨고 난 후에야 그게 현실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아내와 아들을 죽였을 때의 절망감을 떠올렸다. 다시 병이 재발하는 순간 그는 그에게 진 셈이었다. 

그는 다시 손에 나무 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둘렀다. 몸이 다 낫지 않았는지, 아니면 새벽에 벌어진 난투극 때문인지, 그의 몸짓은 여전히 더뎠다. 평소처럼 그는 나아갔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의 오체투지를 지켜봤다.
나는 그가 욕심을 부리는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시작을 했고, 라싸는 멀지 않았고, 이제 와서 그만두기에는 해온 것들이 아까우니 끝까지 해보자는, 그런 욕심. 헛된 일이었다. 이천 킬로미터를 넘는 여정동안 계속 반복해온 맹세는 이미 깨지지 않았는가. 맹세가 깨진 순례에 더 이상의 의미가 있기는 할까. 
세 번 나무끼리 부딪치는 소리, 가죽 앞치마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점점 그가 멀어져 갔다.
나는 수레의 천을 걷었다. 챙겨 갈 짐은 없는지 수레 안을 살폈다. 남루한 옷가지 몇 벌, 순례를 시작하기 전에 들고 왔던 기타 한 대, 더 이상의 짐은 없었다. 기타만 하나 등에 메고 걷기 시작했다. 칼에 찔린 허벅지도 아프거니와, 번거로움까지 감수할 정도로 다른 짐들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았다. 사실 기타 역시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고 값나가는 물건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내 손을 탄 것이기에, 버리고 가려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헤어지기 전, 그는 이미 누나에게 보수가 입금이 돼 있다고 말했다. 누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순례가 끝난 후에야 받게 될 거라고만 했었다. 나는 그에게 정확한 액수가 얼만지 물었다. 그는 내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큰 금액을 말했다. 
누나도 아마 끝까지 사실을 감추려 하지는 않을 터였다. 어차피 들통 날 거란 걸 알았을 테니까. 누나는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좀 뻔뻔하고 가식적인 사람이었기에, 어떤 수를 써서든지 내게 모든 금액을 주려 하진 않으려 할 것이었다. 출소 후에도 누나는 나를 자기 집으로 들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우격다짐으로 집으로 쳐들어갔기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지낸 것뿐이었다. 게다가 누나는 내게 끝없이 충고를 하려했다. 충고를 가장한 말의 저변에 깔린 못미더움, 불편함, 한심함을 나는 전부 다 느낄 수 있었다. 넌 살인자니까. 라는 전제를 깔고서 나를 훈계하려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럴 때면 난 속으로‘내 의지가 아니었다.’라고 되뇌었다. 충고를 들을 때면 밀려드는 과거를 회상하지 않기 위해 나는 애썼다. 한국에 돌아가면 집을 사리라 마음먹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누나와 떨어져 있으면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이 죽어갈 때의 시선, 눈동자. 살인자들은 그런 걸 잊지 못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살인자들은 그 날을 트라우마로 간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을 도려낸 듯, 그 시간은 마치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나와 같은 반이 되자마자, 녀석은 집요하게 나를 괴롭혔다. 만만해 보였던 걸까. 녀석은 장난 같지도 않은 장난을 계속 쳤다. 펜으로 등을 콕콕 찌르거나, 뒤에서 팔로 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거나, 체육복 바지를 내리는 등. 타인의 기분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춘기 학생의 치기 어린 장난이었다. 마치 자신이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고 시위함으로써 우월감을 느끼는 듯했다. 매번 웃어넘기기만 하다가, 그만 좀 하라고 녀석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쉬는 시간이었고, 교실 안이었다. 열 받냐? 한 대 쳐봐. 아주 죽여 버릴 테니까. 녀석은 나를 노려보며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그 순간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녀석에게 곧바로 주먹을 날렸다. 녀석은 휘청거렸고, 그 틈을 타 녀석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은 채 무릎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녀석은 완전히 쓰러졌는데, 그 순간 나는 괜한 걱정을 했다.‘혹시나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다치지는 않아야 하는데…’해서는 안 될 생각들이었다. 
주춤하는 사이, 녀석은 무릎을 손으로 짚고 일어나더니 곧장 주먹으로 내 얼굴을 쳤다. 이번에는 내가 엎어졌다. 하지만 녀석은 나와는 달랐다. 멈추지 않았다. 계속 얼굴을 향해 발을 꽂았다. 발길질이 멈추었을 때, 주변에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터진 입에선 피가 흘러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녀석은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게 갖은 욕설을 내뱉었다. 부모님까지 들먹이며 조롱을 했다. 종이 울렸다. 녀석은 제자리로 가서 앉았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피를 씻었는데, 녀석에게 졌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분했다.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맞았다는 것 역시 미치도록 수치스러웠다. 나는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 날 이후 녀석의 장난은 더 심해졌다. 녀석과 다시 싸워 이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참고 또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폭력적인 상상을 자주 하게 됐다. 꽤 구체적이었다. 형광등을 빼서 깨트린 후 녀석의 목 뒤에 정확하게 찔러 넣는다거나, 손에 커터 칼을 쥐고 있다가 갑자기 녀석의 눈에 박아 넣는다거나, 엎드려 잠자고 있는 녀석의 옆구리에 나무로 된 빗자루 대를 힘껏 찔러 넣는다거나… 하지만 행동으론 옮기지 못한 채, 녀석이 도발할 때면 나는 항상 몸을 떨었다. 두려움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런 상상을 한다는 게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었다. 녀석이 괴롭히는 것보다,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할까 봐, 그로 인해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봐, 나는 그것을 더욱 걱정했다. 폭력적인 상상을 할 때마다 허벅지 안쪽을 꼬집었고, 마치 살이 썩기라도 하는 것처럼 안쪽 허벅지는 항상 푸르고 붉었다.
나는 일부러 골목만을 골라 다녔다. 녀석을 피하고 싶었고, 괴롭힘 당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굣길 골목. 누군가가 뒤통수를 강하게 쳤고, 마침 길가에는 붉은 벽돌이 하나 있었다. 뒤돌아보니 녀석의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내 교복엔 피가 잔뜩 튀어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배 위에 올라탄 채 손에 벽돌을 쥐고 있었다. 얼굴이 뭉개져 밑에 깔린 사람이 누구인지도 분간이 안 됐다. 한참 멍하니 그대로 벽돌을 손에 쥐고 있다가, 지나가던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을 듣고서야,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여자가 겁에 질린 채 달아나기 시작하자,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밑에 깔린 사람의 명찰을 보았다. 녀석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상상이 현질과 겹쳐지는 순간, 나는 살이 잘려나가도록 허벅지를 꼬집었다. 

 마을 입구에 섰다. 거리로 셈해보았을 때는 이 마을이 맞았다. 하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도로를 따라 걸으면 된다고 그는 말했지만 나에겐 초행이었고, 더군다나 티베트의 풍경은 매번 똑같았다. 고적한 도로나 산, 들판뿐, 이정표 역할을 해줄 만한 건물이나 장소 같은 게 없었다. 가끔 차가 지나가긴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을 터라 잡아 세워 길을 묻진 않았다. 
마을로 들어서자 지붕 밑 그늘에서 노파들 둘이 실을 뜨고 있었다. 유목민족 특유의 축축 늘어지는 옷이었다. 볕에 타 그을리고 거친 얼굴들이 나를 보더니 수군거렸다. 골목에서 헤진 공을 차던 아이들도 멈춰 서서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전에 지나쳐 온 마을이 이곳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 달랐다. 반갑게 맞이하던 전과는 달리 이방인에 대한 경계의 눈빛만을 보이고 있었다. 마을에 흉흉한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나는 막연하게 짐작했다. 벽들은 대부분 금이 가 있고 건물들은 때가 타 있었다. 모든 것들이 기계를 통해서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진 것 같았다. 이런 곳에 전화가 있다면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질 듯했다.
전화가 있을 것 같은, 그리고 흔쾌히 빌려줄 수 있을 것 같은 집을 찾아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품 안에는 그가 건넨 종이가 있었다. 한국에서 온 순례자라 티베트 말을 못 합니다. 급한 일인데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순례자에게 사람들은 유독 관대하기에 그 종이를 보여주면 전화 한 통쯤은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그는 덧붙였었다. 
걷던 중 넓은 공터에 수레 한 대가 세워진 게 보였다. 노인 한 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마엔 주름뿐 검은 상처가 없었다. 아마 순례자가 아닌 수레꾼일 거였다. 노인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동안, 저만치에서 나무 장갑끼리 부딪치는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순례자들이 오체투지를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수레 곁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며 나는 다시 헛갈리기 시작했다. 전에 나와 그가 이곳에 멈추어 섰을 때도 사람들은 다가왔다. 그리고 합장했다. 사람들은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었다. 따뜻한 음식과 마실 것이었다. 그와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그것들을 먹었다. 몇몇 노인은 쭈그려 앉아 식사를 구경하기도 했다. 충분히 배가 불렀지만 사람들은 계속해서 음식을 가져왔다. 그는 손사래를 쳤지만, 수레에는 두 사람이 며칠 간 먹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음식이 실렸다. 우리는 식사를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가 나아가는 길을 따라, 사람들은 양옆에서 합장을 했다. 툭제체, 툭제체. 사람들은 계속 그런 말을 했다. 그 날 저녁에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이 나라에선 순례자가 귀족이네요.”
“순례는 티베트 사람들 대부분의 숙원이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례가 티베트인들의 공통된 숙원이라면 그 대접은 당연히 남다를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순례는 고행이었고, 고행하는 자에겐 연민이나 존경 같은 감정이 자연스레 들곤 하니까, 티베트인들이 순례자를 우대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거라고 나는 짐작했었다. 게다가 음식마저도 변변치 않았다. 흰 쌀밥이라고는 가끔 마을 주민들이 순례자들에게 보시할 때에나 구경할 수 있을 뿐, 보릿가루를 물에 적셔 뭉친 한 움큼의 짠빠로 하루 두 끼를 때웠다. 
“툭제체는 무슨 말입니까?”
“감사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들이 당신한테 왜요?”
“순례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체투지를 하면서 계속해서 빌고 다짐합니다. 오직 선행을 베풀며 살 것이라고요. 티베트 사람들은 순례자들이 자신들의 행복과 무사를 빌어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감사함을 표하는 것입니다.” 
“당신도 그런 마음인가요?”
“노력은 합니다만 온전하진 않아요. 감사하다는 말을 받는다는 것이 민망합니다. 그래서 더 온 마음을 쓰려 해요.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는 순례에 대해 말할 때만 두 눈이 빛났다. 
“몸이 고되지만 그것 때문에 순례를 지체하긴 싫어요. 우리는 몸이 고될수록 많은 죄가 씻긴다고 생각해요. 고통을 달게 받습니다.” 
“죄는 씻길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되돌아와서 용서해주지 않는 이상.” 
‘죽은 사람’이라는 말을 나는 경험에 비추어 말했을 뿐이었지만 그의 얼굴엔 순간 당혹스런 빛이 지나갔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아내와 아들이 죽어있던 순간을 떠올렸던 것일까. 몽유병으로 자신이 죽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 덮쳐왔던 절망감을 상기한 것일까. 
“저는 누나네 집에 얹혀살기 싫어요. 누나를 보면 자꾸만 내가 왜 사람을 죽였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거기 박혀 있느니 차라리 여기서 수레나 끄는 게 낫습니다. 순례도 그런 맥락으로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당황해 하는 빛이 서렸지만 반발심이나 분노 같은 건 없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이만 자는 게 좋겠습니다. 움직일 수 없도록 단단히 묶어주세요. 다시는 그러기 싫으니까요.” 
밤이면 살인자로 돌변할지도 모르는 순례자라… 오체투지는 전부 헛것이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나는 끈을 가져오며 자리에 누운 그의 얼굴을 보았다. 눈을 감은 모습이 괴로워보였다.
순례자들이 수레 옆에서 멈췄다. 중년의 여인과, 이제 막 턱 밑에 수염이 나기 시작한 아이 한 명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여인의 오른팔 쪽 옷섶이 맥없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안이 텅 비어 있는 듯했다. 아이의 뭉툭한 코와 갸름한 얼굴은 여인을 닮았고, 쳐진 눈매와 곱슬거리는 머리는 노인을 닮아 있었다. 가족인 걸까.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가져다주며 합장했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떤 노파 하나가 순례자 곁에 쪼그려 앉았다. 그들의 식사를 지켜보며 말을 걸었다. 여인과 노파는 웃으면서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노파가 무슨 말인가를 하자 갑자기 여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에 여인이 입을 열었는데, 낯빛이 변해 있었고 목소리도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순례자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때 여인이 품 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가족사진이었다. 여인과, 노인과, 아이와, 또 노인을 닮은 한 남자가 웃고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며 여인이 티베트어로 뭐라 말을 하고 왼손으로 속이 텅 빈 오른팔 쪽 옷섶을 가리켰다. 여인이 울기 시작했다. 아이도 덩달아 훌쩍거렸고,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렸다. 나는 대강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편은 사고로 숨졌다. 함께 있던 여인은 목숨을 건졌지만 팔을 잃었다. 그 후에 순례를 떠났다. 견딜 수가 없어서, 다른 무엇인가를 하며, 슬픔을 잊어야만 했기에.
여인은 숙인 고개를 한참 동안 들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이 여인의 곁으로 다가왔다. 흔들리는 여인의 등과 어깨를 어루만졌다. 서럽게, 또 오랫동안 여인은 울었다. 툭제체, 툭제체. 사람들은‘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여인을 위로했다.  
식사가 끝난 후 순례자들이 일어났다. 팔 하나가 없는 여인의 오체투지는 느렸다. 합장을 했다. 아니, 합장을 하려고 시도를 했다. 애초에 팔이 하나밖에 없기에 여인에게 합장이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 번의 반쪽짜리 합장. 절반의 마음과 절반의 몸과 절반의 말. 그것들을 부처에게 바치며 여인은 나아갔다. 나는 생각했다. 만약에 여인에게 두 팔이 있었더라면 그것은 온전한 순례일까. 아닐 것이다. 마음도 몸도, 애초에 자신의 것이 아니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머리와 정신으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었더라면 우발적 살인이란 건 벌어지지도 않았을 테니까. 어떤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결국 모든 순례자들의 맹세는 온전하지 못할 거였다.
수레가 내 앞을 지나쳐 가고, 여인은 세 발자국씩 걸으며 절을 했다. 아이가 여인의 속력에 맞춰 뒤를 따랐다. 여인이 내 발 앞에서 비틀거리더니, 간신히 몸을 던졌다. 순례의 시작부터 끝까지, 여인이 수없이 반복해왔던 모든 오체투지가 발 앞에서 모이는 기분이었다. 저 여인도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위해 기도하며 절을 할 것이란 생각을 하자, 또 그 절을 눈앞에서 받자, 나는 왠지 민망해져 자리를 피하고 싶어졌다. 반쪽짜리 합장을 하는 여인에게 마을 주민들은 온전한 합장을 보냈다. 옆으로 물러서며 나도 얼떨결에 합장을 했다. 
마을을 벗어나는 여인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길에는 눈이 쌓여있었다. 순례자들이 오체투지를 하는 길을 따라 눈 위에 그들의 흔적이 새겨졌다. 마치 끈끈한 자취를 남기며, 물 흐르듯 바닥을 기어가는 달팽이 같았다. 나는 엎드린 순례자의 등 위에 크고 나선형으로 꼬인 짐을 봤다. 제 몸보다 커다래서 짊어지기 무거울 것 같았다. 
“길을 모르겠습니다.”
“길을 모르다니요. 도로 따라 쭉 뻗어있으니 그대로 따라가면 될 것을.” 
“그래도 모르겠더군요. 길치입니다.” 
어느 길이 맞는 것인지, 왜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는지,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 같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확답을 할 순 없었다. 내 속에서 말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 떠돌았다. 밖으로 끄집어내기가 어려웠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그에게 저녁을 권했다. 차라리 라싸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 길이 더 쉬울 것 같아요. 하고 덧붙였다. 
“팔은 그렇게 생겨서 어떻게 수레를 끌려 했습니까.”
“이게 무슨 대수인가요. 한쪽 팔로만 끌면 되죠. 힘들면 몸으로라도 밀어야죠. 어떻게 해서든 못할 건 없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히지 않은 음식물이라면 절반이라도 소화하면 되죠.” 
그 말을 듣자 한쪽 팔로만 오체투지를 하던 여인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는 허벅지에 대해 묻는다.
“아파죽겠습니다. 곪을지도 몰라요. 약도 없는 판에 좀 서둘러주셔야겠어요.” 
 그는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했고 나는 간단한 묵례로 받았다. 사실 말입니다, 그가 말했다. 가족들은 제 자의로 죽인 겁니다. 그는 칼에 찔린 오른손으로는 그릇을 들지 못했다. 바닥에 내려놓고, 왼손으로 숟가락을 움켜쥐었다. 그 모습이 불편해 보였다. 입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밥이 절반이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몽유병에 때문에 제멋대로 움직이는 거요. 그게 진짜‘제멋’이라고 하더군요. 잠재의식이 그렇다고 하더군요. 순례를 하며 마음을 바로 쓰면 전부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몽유병 역시 완치될 거라 생각했고요. 그러고 나서는 라마가 될 예정이었는데...” 
“라마가 된 후에도 몸이 멋대로 움직이면 어떻게 할 겁니까?”
“라싸에 도착하면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투지를 할 겁니다. 십만 배를 마쳐야만 순례는 끝나요. 그리고 전 라마가 되지 않을 겁니다. 병이 다시 돋았을 때 저는 라마가 될 수 없단 걸 깨달았거든요.”
라마가 되지 않을 것이라 결심했다면 순례를 당장 멈추면 그만일 것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차피 순례를 시작하며 했던 맹세는 완전히 깨진 게 아닌가요.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여인이 비틀거리며 발 앞에서 절을 하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나는 까치발을 들었다. 언덕 너머로 그의 머리가 보였다. 그의 몸이, 다리가, 차례로 솟아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라싸를 등지고 순례자를 마중 나와 있었다. 오백 미터, 삼백 미터, 백 미터... 그가 느리게 다가와 라싸의 입구에서 멈춰 섰다. 그는 가죽 앞치마와 나무 장갑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제껏 사용해온 것과는 다른 목재로 만들어진 나무 장갑이었다. 기타의 상판과 후판을 자른 후 두꺼운 오, 육 번 줄을 엮어서 만든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장갑으로 만들 나무가 없다고 말하며 그에게 기타로 만든 나무 장갑을 내밀었었다. 그는 두 손으로 나무장갑을 받았었다. 이미 내 손때를 탔던 기타가 그의 손으로 옮겨간 셈이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가 목에 하얀 천을 걸었다. 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내가 칼로 찌른 그의 오른손에 하얀 천을 감아줬다. 그 역시 화답하듯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목에 걸린 천을 하나 집어 들어 그가 찌른, 진물이 흐르는 내 허벅지를 감았다. 서로 이성을 잃고 날뛰었던 순간, 그때 입혔던 상처 구멍에 흰 물이 스미는 것 같았다. 
벽에는 천수천안관음상이 그려져 있었다. 천 개의 눈으로 사방을 살피고 천 개의 손으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미간 사이에 점이 찍혀 있었다. 작지만, 모든 시선을 빨아들이는 듯한 그 점.
나는 그의 이마에 있는 검은 상처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그를 향해 일제히 손을 모았다. 그의 이마에 난 상처와 수많은 합장들이 모여, 벽에 그려진 천수천안관음상과 겹쳐보였다. 바람이 불었다. 목에 걸린 여러 포의 하얀 천이 바람에 흩날리며, 번갈아 그의 얼굴을 희게 어루만졌다. 얇은 천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통에 그의 얼굴은 반투명하게 보였다. 그 가운데서 선명한 것은, 머리 위에 난 상처. 점. 아니, 마치 제 삼의 눈동자처럼 보이는, 상처라 말할 수 없는 무엇. 나는 그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세 번째 눈으로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나는 궁금해졌다. 

김종성(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착학과4 )  pressyu@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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