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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옳다는 길과 가치를 무작정 따라가지 마라
  • 장수희 준기자
  • 승인 2015.11.16 18:34
  • 호수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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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석하 동문(무역학과 70학번)은 우리 대학교를 졸업한 후 ‘진도모피’에 입사했다. 대학 시절 영대신문사에서 쌓은 경험과 능력으로 승진을 거듭하며 해외에서 회사 법인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국교도 없던 러시아로 건너가 제1호 한국인 사업가로 사업을 번창시켰다. 마흔에 회사를 퇴직한 후 현재는 영국에서 여행사를 경영하며,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그런 그를 만나 살아온 날들과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을 들어본다.

영남대학교 학생 권석하는 어떤 사람이었나?
 전공은 무역학과였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경산으로 와서 친구가 없었다. 영대신문사가 내 친구였다. 그리고 공부, 취미, 연애 등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본 것 같다. 뭐든 열심히 했다.

 대기업에 입사시험을 치고 떨어진 뒤 미련없이 등을 돌려 모직회사에 입사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대기업 입사를 도전해보고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입사시험을 치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전에 우연히 ‘진도모피’라는 회사의 채용공고를 보게 됐다. 한미합작 회사였는데 해외에 갈 기회가 많은 회사라 선택했다.

 외국 생활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친구’라고 말했다. 이를 어떻게 견뎠는가?
 영국에서 나는 별 볼 일 없고 얼굴색 다른 이민자 한 명에 불과했다. 영국에서는 마음을 트고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이를 취미생활로 버텼다. 한국에서 15만 원 정도 하는 유명한 연극을 영국에서는 2~3만 원에 볼 수 있고, 예술의 전당에서 유명한 ‘피카소 전’도 지하철만 타면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이 굉장히 위안이 됐다.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에 퇴직을 결심했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다면?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출세를 할 만큼 해봤다고 생각했었고, 내 회사가 아닌 곳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적당히 폼나게 직장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월급쟁이 생활이 끝날 날짜를 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만두게 됐다.

 영남대 출신임에도, 강연에서 영남대를 ‘지방 삼류대학’이라 말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본인을 과대평가하는 것도 과소평가하는 것도 좋지 않다. 내가 영남대학교 출신이고, 이를 똑같이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회사에 입사해보니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글을 쓰는 것도, 세상을 보는 눈도 나보다 더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상사들이 뭘 말할지 빨리 알아채 잔소리 한 번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술 마시고 늦게 출근하는 탓에 매일같이 혼났다. 직장에 들어갔다고 공부가 끝난 것이 아닌데, 그 친구들은 장래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90%의 직장인이 다 그렇다. 그러니까 세상이 영남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본인이 알고 있어야 하고, 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다고 열등감을 느끼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마라. 일부러 자극을 주기위한 것이었다. 나도 지방 삼류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스스로 인식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영남대학교 학생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영남대학교 학생으로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실력을 갖춘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것이 한 가지 정도는 있다는 것이다. ‘진도’라는 회사면접에서 면접관이 “영대신문사 출신이네, 특이한 경력을 가졌다”며 이에 대해 한참을 물으셨다. 이어 면접관이 특기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커피 맛을 아는 것이 특기입니다”고 답했다. 실제로 특기이기도 했지만 당시 커피 종류가 많지 않았기에 이는 굉장히 튀는 발언이었다. 면접관이셨던 분이 나중에 말씀하시기를 그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영대신문사라는 경력, 재치있는 대답처럼 남들과 다른 게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봉사활동을 했다, 해외연수를 다녀왔다’가 아닌 본인만의 것이 필요하다. 당장 업무에 도움되지는 않더라도 이를 통해 열정과 성의, 인내와 끈기 같은 것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전혀 가지지 못한 특기나 능력을 가져야 한다.

 후배들에게 해외에서 자신의 삶을 펼쳐나갈 방법을 생각해보라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해외에 나가보면 정말 넓고 색다른 세상이 있다. 매일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피자도 먹고 스파게티도 먹어봐야 한다. 체질에 맞지 않아서 먹지 않는 것과 아예 먹어보지도 못한 것은 다르다. 해외에 나가 생활해보고 자신의 체질과 맞지 않으면 돌아오면 된다. 가보지도 않고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지 말라는 소리다. 해외에 가면 나름대로 좋은 면도 많고 나쁜 면도 있기에, 한번 경험을 해보고 꿈을 꿔보란 뜻이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젊음을 살 수 있다면 사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강연에서 본인은 그러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솔직하게 말해서 인생을 사는데 금 숟가락을 열 개 물고 태어난 사람도 인생이 항상 꽃밭일 수는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인생이 운 좋게도 잘 풀린 경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삶에서 힘든 일이 상당히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을 다시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면 답은 ‘NO’다. 다시 시작하면 지금 이 위치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고,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현재 위치에 만족한다.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리고 이를 어떻게 극복해왔는가?
 모스크바에서 사업을 처음 시작하고 자리 잡을 때까지가 가장 힘들었다. 당시 우리나라와 국교도 없던 소련에서 사업을 처음 시작하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다. 그땐 사무실에 앉아있어도 전화 한 통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눈 오는 날 사무실 책상 앞에서 북극까지 이어진 거대한 숲을 창밖으로 쳐다볼 때 느끼는 고독감과 절망감, 소외감은 어마어마했다. 사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직원들과의 소통도 힘들고 모든 것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그때 해소방법이 세 가지 있었다. 하나는 비디오테이프다. 인생이나 사랑에 대한 영화를 보면 우울해져, 집 안에서 액션영화 비디오테이프를 많이 빌려 봤다. 그 다음이 자는 것이었고, 마지막 수단이 요리하는 것이었다. 시장에 가고, 재료를 사오고, 요리를 해서 먹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렇게 힘든 것을 이겨냈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당시 영남대 출신이 본인뿐이라고 했다. 그 속에서도 본인이 좋은 성과를 내며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영남대학교 신문사 생활이 엄청난 도움이 됐다. 신문사 생활 4년 동안 월급쟁이들이 평생을 경험할 것들을 압축해서 겪어볼 수 있었다. 그래서 신입사원으로 앞에 앉아있어도 상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알 정도였다. 상관이 요구하는 것이, 요구할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준비해놓으면 잔소리들을 일도 없고 업무도 빨리 끝낼 수 있다. 그러면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신문사에서 기획을 하고, 취재 후 기사를 쓰는 모든 것이 회사생활에 그대로 도입이 될 수 있는 일종의 시험이고 연습이 됐다.

 본인을 지금까지 이끌어준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
 타고난 낙관주의인 것 같다. 고민도 많이 하지만 일단 상황이 벌어지고 나면 뒤돌아보지 않는다. 만약 내일 아침 9시에 회사가 부도가 난다고 하면, 오늘 저녁 6시부터 내일 아침 9시까지 15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처럼 이미 벌어진 일을 가지고 뒤돌아서서 고민하고 힘들어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나의 버팀목이 된 것은 낙관주의이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

 영대신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선배님에게 영대신문이란?
 대학후배 중에 경향신문의 특파원 기자였던 김학순이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자신의 언론생활 동안 쓴 글을 모아 낸 책이 있는데, 책 서문에 보면 ‘나를 있게 한 것은 8할이 영대신문’이라는 글이 있다. 영대신문은 나에게 또 하나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영남대학교 선배로서 그리고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상이 옳다는 길과 가치를 무작정 따라가지는 마라.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다른 방법도 생각해야지 남들이 가는 길을 쫓아가며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서울로 가는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KTX를 타고 가면 빠르게 갈 수 있겠지만 고속버스를 타고 싸게 갈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세상이 가는 길로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친 기자의 이야기

 참 맑은 분이셨다. 선배님께서는 지난 세월 동안 쌓아 온 노련함은 물론 여전히 불타오르는 열정을 가지고 계셨다.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던 진지함보다는 인터뷰가 끝난 후 함께 식사를 하면서 보여주셨던 모습이 계속 생각난다. 청년 시절 속 긍정적이었던 모습과 아내분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조곤조곤 대학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시며 웃으시던 모습, 에서 ‘정말 맑은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대학 시절을 선배님처럼 보내려 한다’고 문자를 드렸다. 답장으로 ‘만나서 기쁘고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라고 왔는데, 보는 순간 힘이 솟는 것 같았다. 선배님의 ‘수고하시게!’라는 한 마디가 정말 큰 위로가 됐다.
선배님이 보여주셨던 열정과 따뜻한 마음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권석하 동문의 집필도서

   
▲ 저자 케이트 폭스역자 권석하출판사 학고재 출간 2010.01.27
   
▲ 저자 권석하출판사 안나푸르나 출간 2013.10.21
   
▲ 저자 권석하출판사 안나푸르나 출간 2015.08.10

 

장수희 준기자  j20915@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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