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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로를 거닌 사람]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 장보민 기자
  • 승인 2016.05.11 17:06
  • 호수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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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포기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학창시절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어떤 학생이었는가?
 영남대학교 야간강좌 건축학부로 입학했다. 대학교 등록금이 비싸지 않은가. 별의별 아르바이트를 다했다. 여행을 좋아해서 겨울방학에는 무조건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름방학에는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4년을 휴학 없이 보냈다.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보니 더 열심히 공부했고 수석으로 졸업하게 됐다.

 영남대 건축공학과를 수석 졸업했지만, 현재는 포토그래퍼로 일하고 있다. 사진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대학교 1학년 때이다. 당시에는 DSLR이 보편화되지 않았었는데 간혹 선배들이 가지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이 멋있었다. 미대생들이 화통 들고 다니는 게 너무 멋있어 보이듯 말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마술에 꽂혀있었는데, 직업으로 전환하기에는 너무 배고픈 직업이라 포기하고 공부를 했었는데, 그때 마술을 대신해 등장한 것이 사진이랑 여행이었다.

 수석졸업에 대기업 입사,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상황이었을 것 같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25살에 회사에 입사했는데, 남들이 엄청 부러워했었다. 회사를 그만둔 건 회사사정이 어려워진 것도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지만, 10년 뒤에 봤을 때 내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만둔 것이었고, 그 때 ‘나답게 살자’고 다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게 나답게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이라는 영화 속의 감독이 나이고, 배우도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만두게 됐다.

 수석졸업에 대기업까지 들어간 아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사진을 찍겠다는데 부모님의 걱정이 컸을 것 같다. 반대는 없었는가? 있었다면 어떻게 이겨냈는가?
 엄청 반대했었다. 아니 반대가 아니었다. 회사에서 잘렸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지금도 그렇게 알고 계신다. 인터뷰를 보신다면 알 수도 있겠다. 구조조정에 내 이름이 있다고, 잘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포토그래퍼가 되고 나서도 부모님을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나는 돈도 어느 정도 벌고, 인지도도 생기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있고 너무 즐겁다. 아쉬울 것이 없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신다.

 회사를 그만두고, 카메라를 들고 호주로 떠났다. 사진동아리에 있었던 것 말고, 사진에 대해 공부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사진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처음은 여행이었다. 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는데, 그것을 도와줄 요소가 사진이었던 것이다. 선택하게 된 이유는 그냥 재밌었다. 내가 평생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도 했었고, 그 때 내 앞에 있었던 요소가 사진이었던 것 같다. 사실 다른 요소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장 내 앞에 있었던 것이 사진과 여행이었다.

 해외에서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로 활동했던 당시 이야기를 조금 듣고 싶다.
 사실 나는 토익 605점에 영어를 굉장히 못했었다. “Can I take a photo” 한마디만 할 줄 알았었다. 하지만 하루에 몇 시간씩 사진을 찍으며 여기서 찍자, 포즈는 이렇게 잡아줘 등  이런 식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길에서 영어를 사용하면서 실력이 늘었다.
 어쩌다 사진을 찍게 된 흑인 친구를 통해 처음으로 돈을 받고 사진을 찍게 됐다. 클럽 사진이었는데 포트폴리오를 보내달라고 하더라. 클럽 사진은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어서 포털사이트에 클럽파티로 검색해 나오는 사진을 모두 보내줬었다. 당연히 잘 못 찍었고 결국 잘렸다. 흑인인데 하얗게 찍어달라더라. 못한다고 하니까 잘렸다.(웃음) 길에서 일거리를 굉장히 많이 구했었다.

 포토그래퍼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지난 1월에 작은 커피숍에 8점 정도의 사진을 걸어두고 사진전을 열었었다. 당시 사람들이 나에게 작가라고 불러줬었는데,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나는 작가라는 말을 부담스러워서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와 포토그래퍼는 엄연히 개념이 다르다. 나는 작품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작가라고 해주는 게 기분이 묘했다.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사진작가로 인정받는 순간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 내 사진을 보면서 행복하다고 말해주면 기분이 너무 좋다. 사진을 잘 찍었다는 말보다 행복하다는 말이 더 좋다.

 지금까지 패션사진을 찍어왔지만 올해부터는 자연, 익스트림 사진도 찍을 계획이고, 7월부터는 유라시아 대륙을 오토바이로 횡단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런 도전과 변화에 대한 다짐과 실천의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포기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은 대기업에서 일을 하며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건축 관련 일을 그만뒀기 때문에 포토그래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진 찍는 목적은 우주를 찍기 위함이다. 우주를 찍기 위해서는 우주를 찍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런데 내가 사람사진만 찍어서는 우주를 찍을 수는 없기에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무릎까지만 물이 와도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물을 싫어하는데 수중촬영에도 도전하려 한다. 싫더라도 내 목표가 있으니까 해야 하는 것이다.

 포토그래퍼로서 사진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
 ‘제 사진에 찍히는 모든 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사진을 보는 모든 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진을 행복하게 오래 찍고 싶습니다’ 페이스 북 타임라인에 썼던 글인데, 이게 내 사진철학이다. 모든 사람이 내 사진을 보고 행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 기준에 있어서는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꿈이라 생각한다.

 사전조사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느꼈지만, 현실보다는 이상과 꿈을 좇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나답게 살기 위해서이다. 내 현실은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하시고, 어머니가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집도 주택공사 임대아파트에 월세를 내고 살고 있다. 회사에 다니며 부모님을 부양하는 것은 현실이었고, 이상은 세계일주를 다니며 나답게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늘 현실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둘 당시 현실과 이상을 선택하라 했을 때 또 현실을 선택한다면 후회할 것 같았다. 10년 뒤 나를 돌아봤을 때,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답게 살겠다고 이야기했고, 그 때부터 나는 늘 이상만 선택해왔다. 포토그래퍼로서의 삶이 내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현실이 됐지 않은가. 이상을 쫓아하는 모든 것들은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결과적으론 그것이 또 현실이 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런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무엇이든 해야 답이 나온다. 나는 사실 스펙 기계였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대외활동도 많이 했다.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했다. 내 앞일이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스펙기계였고 수석졸업이었지만, 취직할 때 토익성적도 없이 입사지원서를 쓰기도 했다. 지원서를 쓰고 나서 지원서의 성적에 맞춰 토익시험을 쳤다. 주변에서 미쳤다고 했다. 주변에는 아직도 취업을 하지 못한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은 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뭐든 해야지 답이 나온다. 해봐야 실패라도 하지 않는가. 사진뿐만 아니라 모든 활동에 있어서는 뭐든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어떤 직업을 가지든 말이다.

독자들의 ‘나도! 나도!’

 사진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들에게 알려주는 꿀팁이 있다면?
 인물 사진 찍을 때는 4시에서 5시 사이에 찍는 것이 좋다. 노란 빛이 많이 나는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보통 해가 위에 있는데 그때는 해가 뉘어질 때이다. 빛이 예쁘게 잘 찍힌다. 웨딩촬영 시간을 그때로 많이 잡는다. 그리고 야경을 찍으려면 밤에 찍으면 안 된다. 해가 질 때 찍어야 노란빛, 보랏빛, 파란빛이 나오는 드라마틱한 야경을 찍을 수 있다.

 사진에 대한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여행을 비롯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다. 사람마다 생김새부터 모두 다르다. 그들을 통해 영감을 얻기도 한다. 사실 나는 놀면서 많이 얻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재즈바나 칵테일 바를 간다든지 해서 사람을 만나서 놀기도 하고. 논다는 것이 집에 누워서 노는 게 아니라 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친 기자들의 이야기

 인터뷰를 준비하면서도,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나라면 저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하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었다. 아직도 꿈을 찾아 헤매고 있는 기자에게 있어, 본인만의 꿈과 철학이 있다는 점과 과감히 현실이 아닌 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부러워할만한 일이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답게 산다’를 떠나 ‘나다운 것’이 뭔지도 모르는 청년들이 태반인 요즘 시대에 말이다. 이상을 좇아 달려오다 보니 그것이 현실이 됐다는 포토그래퍼님의 일화와 말들이 아직까지도 머리를 맴돈다. 현실이 될 수 있었던 꿈들을 시도도 해보지 않은 채 나만의 잣대로 터무니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포기한 것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본지 기자들에게도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누군가 꿈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말하고 그 꿈을 현실로 실현시켜나가고 있는 순간이 오길 바란다.

장보민 기자  jbm3905@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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