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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人3色 강따라 사람따라] 도심속의 시간여행
  • 조규민 기자
  • 승인 2016.05.23 16:39
  • 호수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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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의 시간여행

 대구 도심은 400여년간 영남 지역의 중심지였다. 특히 한국전쟁의 피해가 적어 근대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격동의 근현대사에 얽힌 이야기들이 있는 곳이다. 이렇듯 대구에는 많은 시간과 역사가 스며들어 있다. 그 흔적들은 여전히 대구의 골목들에 남아 있다. 본지의 기자는 많은 이들이 조선시대부터 근대 사업발전까지 흘러간 시대 순서대로 둘러보기 좋아 추천하는 1코스를 돌아봤다. 1코스에는 북성로, 경상감영공원, 향촌문화관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을 방문해 대구의 시간과 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봤다.

 경상도를 관할하던 관청, 경상감영공원=본지의 기자는 첫 번째 코스로 경상감영공원을 방문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것들은 조선시대의 여러 건축물이었다. 그 건축물 주변으로 어르신들이 둘러 앉아 쉬고 있었다.

 이 곳은 원래 ‘경상감영’이 있던 자리로, 그 터를 보전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조선시대 팔도 중 경상도를 관리하던 관청(오늘날의 도청)이었는데, 원래 경상도 상주에 있다가 안동을 거쳐 선조 34년 때 대구로 이전했다. 이는 훗날 지방 행정이 개편된 뒤로 경상도가 아닌, 경상북도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경상감영공원의 입구에서부터 걸음을 옮겨 공원을 둘러 봤다. 분수대, 연못 등의 볼거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역사의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엔 경상감영 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선화당(宣化堂)’과 처소로 쓰였던 ‘징청각(澄淸閣)’이 웅장한 자태로 서있었다. ‘선화당’과 ‘징청각’은 두 차례 이상 화재가 났으며, 지금의 건물은 재건된 건물이다. 공원을 둘러보던 중 비석들이 한 곳에 서 있는 장면이 시선을 빼앗았다. 이 비석들은 관찰사와 대구판관을 기리기 위해 백성들이 세운 총 29기의 선정비다. 공원을 다 둘러본 후, 다음 코스인 대구근대역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경상감영공원의 풍경


 조선식산은행에서 근대역사관으로=경상감영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근대 대구의 모습과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근대역사관’이 있다. 이 곳은 원래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 지점으로 생겨난 건물이지만, 2011년에 근대 역사관으로 개관했다. 르네상스 양식을 양식으로 지은 건물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문화재적 가치를 크게 평가받고 있다. 옛 ‘조선식산은행’의 흔적도 전시돼 있으며, 1900년대의 ‘경상감영’ 모형도 있었다. 이 곳을 둘러보며 가장 좋았던 점은 조선 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구의 근대사를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와 연표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본지의 기자는 김해에서 올라와 타지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곳을 통해 일제 강점기, 광복 이후 대구의 성장과정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동시에 ‘김해는 어떤 근대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 근대역사관의 내부 모습

 대구문학관과 향촌문화관=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향촌동에 위치한 ‘향촌문화관’이었다. 이곳은 4층 건물 중 1,2층으로 이뤄져 있었으며, 관람료는 천원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향촌동은 1905년, 대구역이 인근에 들어서면서 역을 중심으로 근대 대구의 새로운 중심지로 성장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동네다. 그때의 모습을 담은 향촌문화관에 들어갔을 때, 안내원 아주머니가 “젊은 사람이 여기 잘 안 오는데 관심이 많아 보여 보기 좋다”고 말씀하셨다.

 이 곳에 전시된 자료는 관람객들이 근대를 살아왔던 시민들의 모습을 확인해보고, 그들에 대한 되새겨볼 수 있게끔 꾸며두고 있었다. 또한 6.25부터 1970년대까지 근대 향촌동의 풍경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당시 중ㆍ고등학교 학생들의 교복차림이나 교과서 등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직접 교복을 입을 수 있도록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당시 학생들의 단체사진도 볼 수 있었는데 현재 학생들의 모습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 학생들이 조금 더 건강한 것 같다. 사진을 찍을 때의 포즈 역시 지금과 별 차이가 없었다.

 문화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당시 가게들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풍경들이었다. ‘뚱보집’, ‘태양의 거리’ 등 근대의 영화관과 술집들의 모습은 근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책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가게들의 모습들이었다. 시장의 풍경도 전시돼 있었다. 누군가를 부르고, 앉아서 밥을 먹고, 계산을 하는 모습 등 시장 고유의 모습은 현재의 시장모습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시장의 정겨운 모습들은 보기 좋다.

 향촌문화관건물 3,4층에는 ‘대구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곳의 입장료는 무료다. 처음 마주한 풍경은 단순한 도서관과 같은 느낌이었다. 이곳은 조선 문학부터 근대 문학까지 많은 문학 자료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또한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대구·경북에서 활동한 문인들의 문학 자료들을 수집ㆍ전시하고 있다. 전에 둘러봤던 향촌문화관과 달리 엄숙한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다. 둘 다 대구의 근대를 다루고 있었지만 1,2층의 분위기와 3,4층의 분위기가 다소 달랐다. 향촌문화관이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면, 이 곳은 조용한 도서관과 같은 분위기였다.

   
▲ 향촌문화관에 전시돼있는 근대 시장풍경

역사가 숨쉬는 거리, 북성로

 1900년대 초 북성로는 근대 일본인들과 함께 번영했다. 일본인이 세운 백화점이 들어서며 그 화려함이 더해졌다. 해방 이후 근처에 미군 부대가 생기면서 대신동에 있던 공구 상회들이 옮겨와 지금의 공구골목으로 변화됐다. 그와 동시에 이곳은 많은 다방이 있었던 거리이기도 하다. 본지의 기자는 이전에 이곳이 근대골목인 것을 알지 못한 채 지나간 적이 있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이 근대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골목이란 것을 알고 난 뒤에 방문하니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공구골목의 흔적=이 거리는 대부분 공구점이 위치하고 있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렇게 공구점이 많으면 장사가 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가게들이 대부분 낡아 더욱더 근대골목의 분위기가 풍겼다.

 이곳에는 북성로가 공구골목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공구박물관’이 있다. 공구박물관은 목조건물로, 공구상의 방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 곳의 특이점은 1930년대 지어져 미곡창고로 쓰였던 2층 근대건축물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 공구골목에 위치한 공구박물관


 최종 도착지 달성공원=본지의 기자는 대학교에 입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수업시간에 ‘달성공원’에 대해 조사하는 과제를 맡은 적 있다. 이후 달성공원을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첫 방문을 했다. 대구 근대골목 1코스의 최종 도착지인 달성공원은 1905년 일제에 의해 조성된 공원으로, 1967년 대구시에서 새로운 종합공원 조성계획을 세워 현재의 대공원이 됐다. 이 곳에는 최제우 동상, 이상화 시비 등 동물원과 함께 역사 인물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보통 옛 근대의 흔적들을 보고 싶은 경우엔 박물관을 방문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대구근대골목의 경우엔 아직 과거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거리들을 거닐며 근대의 흔적들이 대구 도심 속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 TV나 영화에서 근대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직접 한번쯤 근대골목들을 방문해 시간여행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 달성공원에 위치한 이상화 시인의 시비

조규민 기자  jgm0607@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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