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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만 파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 장보민 기자, 지민선 기자
  • 승인 2016.08.29 16:44
  • 호수 1627
  • 댓글 0

 ‘작은전시공간’을 알고 있는가? 이는 우리 대학교에 재학 중인 이기택 씨(산업디자인3·휴)가 운영하고 있는 SNS 페이지다. 그는 본인의 그림, 영상 등을 ‘작은전시공간’에 업로드해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기발랄한 연출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한 우물만 파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본인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영남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12학번 이기택이라고 합니다. 작품 활동을 한 지는 2년 반 정도 됐고, 주 장르는 초현실주의에요. 그림, 사진, 영상 이렇게 세 가지 분야로 활동 중인데, 제가 가장 많이 알려진 분야는 사진과 영상이에요.

 ‘이기택 학생’에서 ‘이기택 작가’로 불리게 됐어요. 어떠신가요?
 처음에는 저도 ‘초현실주의’라는 것을 잘 모르고 시작했어요. 극사실주의로 그림을 시작했고 극사실주의에 의미를 부여해 그림을 그렸는데, 사람들이 초현실주의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때부터 초현실주의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초현실주의 작가로 불리게 됐습니다. 취미로 하는 작업인데 작가라고 불러 주시니 처음엔 생소하고 부끄럽기도 했어요. 또 기성 작가들을 찾아뵙고 소통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전시를 열게 됐어요. 예술인 협회에도 등록하고, 일을 하면서도 제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직은 얼떨떨하고 실감이 잘 나지 않아요. 그래서 아직 작가라는 호칭이 부끄럽답니다.

 처음 이런 작업을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갖고 있었던 목표가 있을 것 같아요.
 초현실주의라는 장르가 사람들에게 어렵고 기괴하게 다가올 수 있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대중들이 그것에 최대한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대중성’을 부여하려고 했어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일상을 배경으로 작업하면 사람들의 공감대를 조금 더 형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셀카나 일상 느낌의 사진을 많이 찍어요. 이로 인해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이 개선됐으면 해요.

 첫 작품을 SNS에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는데, 이 매체를 이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군대에서 그림 작업을 시작했고 ‘작은전시공간’이라는 SNS 공간도 군대에서 제작했어요. 저는 사실 그림을 그리는 중에 어느덧 제 그림을 검증받고 싶고 저장을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저만의 SNS 공간을 개설해서 저장을 목적으로 꾸준히 업로드하다가, SNS 알고리즘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작품을 계속해서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초창기에는 저만의 전시 공간, 제 작품을 모으는 공간으로 만든 건데 이제는 ‘이기택’이라는 개인의 이름보다 ‘작은전시공간’이 더 알려졌어요. 결과적으로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죠. 처음엔 그림 저장 목적이 강했었는데 지금은 제가 있기까지를 만들어준 브랜딩, 아이덴티티가 됐어요.

 한 작품이 탄생하기 전까지 여러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 과정은 어떠한가요?
 보통 작품 구상에 오랜 시간을 쓰는 편이에요. 한 작품이 나올 때 2주 정도 아이디어를 짜고 실제 작업은 거의 4~5시간 만에 완료돼요. 영상 작업은 30초 분량을 만들어도 1주일씩 걸리곤 해요.

 작품에 본인이 직접 등장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일차적 이유로는 저작권 문제 때문에 저를 모델로 썼던 것도 있어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초현실주의 사진이다 보니 저작권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이런 이유로 제 사진을 넣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저만의 특징이 됐어요. 또 작품 자체가 제 머릿속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보니 다른 분들보다는 제가 직접 연출하는 것이 더 편하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제작하셨던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거인’이라는 작품이에요. 저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작업할 때 가장 재미있게 했던 작품 중 하나죠. 누구나 어릴 때 ‘걸리버 여행기’를 보고 거인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거에요. 저도 단순하게 ‘내가 거인이 되어 저 담벼락을 넘어보면 어떨까’해서 도전했던 작품이에요.

 독자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본인의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 슬로건이 ‘아이처럼 생각하자’예요. ‘풍선’이라는 작품이 바로 ‘아이처럼 생각하자’하고 시작해서 만든 첫 번째 작품이고요. 이 작품은 풍선이 가라앉고 제가 공중에 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어요. 누구나 어렸을 때 한번쯤 해봤을 생각들을 실현시켜 작품의 공감대를 많이 형성하고 싶어요.

 작품들이 ‘한번쯤 상상은 해봤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것’이어서 더욱 눈길이 가는 것 같아요.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초현실주의 작품을 많이 보는 것도 있지만, 주로 일상 속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가 많아요. 제 작품 중에 나팔을 부는 작품이 있는데, 그것도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버스를 타고 가다 재즈 음악이 들렸고 나팔 소리가 멋지게 연주됐어요. 그래서 저도 나팔을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우리는 보통 손으로 나팔 부는 시늉을 하잖아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손을 나팔로 표현해 작품을 만들었어요.

 사진 촬영도 처음에는 휴대폰으로 하셨고, 포토샵과 같은 프로그램도 다 독학으로 습득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 같은데, 작품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아무래도 초창기에 작품 활동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어요. 아파트 주차장에서 삼각대를 들고 혼자 촬영하니 아파트 주민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고 심지어 측량하러 왔냐고 물어보기도 했었어요. 최근에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초창기에는 이상하게 보는 시각이 많았고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어서 힘들었어요.

 그림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영상으로 이젠 VR(가상 현실)콘텐츠까지, 예술 작품을 하나의 장르와 연결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울 것 같은데,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 장르를 여러 콘텐츠와 연결하면 그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 같아요. 하나만 고집하면 그 효과는 반감된다고 생각해요. 한 우물만 파면 성공한다고들 하는데, 저는 한 우물만 파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분야를 접하다 보니 여러 인맥이 생기고, 다른 분야의 사람과 만나 교류를 하면 시너지 효과가 생겨요. 좀 더 많이 공부해서 다양한 장르로 사람들을 만족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꾸준히 발전하고 싶어요.

 초현실주의 작품과 VR콘텐츠, 어떻게 이 두 분야를 연결하게 되셨나요?
 VR콘텐츠는 본인이 체험할 수 없는 공간에 가서 그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에요. 그래서 VR콘텐츠는 초현실을 좀 더 극대화시킬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지금 VR시장은 부흥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콘텐츠가 많이 부족해요. 제가 좀 더 발 빠르게 공부하고 작업해 한국에 많이 알리고, 나아가서는 이를 통해 한국을 좀 더 알릴 수 있을 것 같아서 VR콘텐츠에 집중하고 있어요.

 한 우물만 파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대구토박이였어요. 항상 서울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결국 제 자비로 서울을 오갔어요. 그렇게 작가들을 만나고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점점 길이 열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대구에만 있었으면 과연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많이 했죠. 한 우물을 파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 또한 초현실주의라는 장르를 파고 있으니까요. 단지 그 길에 있어서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한번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름이 알려지면서 기업과 협업을 하기도 하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협업이 있나요?
 작년 말쯤에 맥주 회사와 협업을 했어요. 한국 광고 시장은 스타를 통한 마케팅이 대부분인데, 스타를 이용하지 않은 제 작품이 시안으로 채택됐고, 그것만으로도 ‘한국 광고 시장에 큰 변화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창기에는 맥주회사에서 맥주로 페이를 받았었어요. 아직 그 맥주가 집에 남아있어요.(웃음) 그때는 인지도가 낮다보니 ‘열정페이’로 일했어요. 현재는 제가 꾸준히 활동하면서 인지도를 쌓다보니 그에 정당한 페이를 받고 있어요. 그 당시 계약서 명칭이 ‘외주 계약서’였다면 이제는 ‘파트너십’으로 바뀌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뿌듯함을 느끼고 있어요.

 그림 활동뿐 아니라 영상 활동도 하시는데, 앞으로도 해보고 싶은 영상 제작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금은 영화그래픽을 공부 중이에요. 영화에 쓰이는 프로그램을 사용해 볼 수도 있고 좀 더 좋은 장비와 환경에서 작업물의 질을 높이고 싶기 때문이죠. 또 기회가 된다면 영화 제작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작가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인가요?
 여러 순간이 있었지만 그 중 하나는 제가 힘들었을 때 어떤 팬 분께서 댓글을 달아주셨을 때에요. 피카소와 같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볼 땐 아무런 감흥이 없는데, 제 작품을 보면 공감이 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말이 정말 힘이 됐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공감을 일으킬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 이후로 많이 힘을 냈던 것 같아요.

 본인에게 있어서 초현실주의란 어떤 의미인가요?
 초현실주의는 이기택을 사람으로 살게 해준 원동력이에요. 초현실주의를 알기 전에는 그저 학생에 불과했는데, 초현실주의를 알고 난 뒤 지금은 제 이름을 달고 작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장르이죠. 제가 이 취미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인 것 같아요.

 10년 후 본인은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작가가 되길 꿈꿨으면 휴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복학도 생각하지 않았을 거에요. 저는 앞서 말했듯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회사에 다닐 의향도 있어요. 회사에 다니면서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또 회사에 다니면서도 작품 활동은 할 수 있고요. 10년 후에는 평범하게 작품 하는 회사원이 될 수도 있고, 광고쪽으로 창업을 하는 사업가가 되어 있을 수도 있어요. ‘작가’만으로 남아 있지는 않을 것 같아요. 무언가를 하는 작가, 직업이 있는 작가가 될 거에요.

 앞으로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9월 6일에 어도비에서 진행한 국제공모전 결과 발표가 나요. 영남대학교 학생 신분으로 준결승에 오른 상황이에요. 만일 수상자가 된다면 해외쪽으로도 진출해 볼 계획이에요. 이번 공모전에서의 수상은 디자이너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저로서는 그 상을 받게 된다면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 될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내년에 복학해서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목표에요.

 우리 대학교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1년 반 전만 해도 그저 평범한 영남대학교 재학생이었어요. 사실 우연히 취미 하나 잘 둬서 기업이랑 협업도 하고 지금처럼 작가가 된 거예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 됐든 한 번쯤 해봤으면 해요. 그리고 그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었을 때 작가들의 이메일 주소를 찾아서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었어요. 또 무턱대고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있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 지금은 어느 누구랑 만나도 어색하지 않게 됐고 서로 얘기할 거리도 많아졌어요. 아까 말했듯이 하나하나 다 따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독자들의 ‘나도! 나도!’

 작가들을 만나면 주로 어떤 얘기를 나누나요?
 똑같아요. 그냥 사람이에요. 형, 친구 만나듯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게임 얘기도 해요. 특별한 점이 있다면 작품과 관련한 고급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조언도 많이 해준다는 정도겠죠.

 사실 초현실주의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낯설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본인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참고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사진에 어려운 변화를 주지 않는 편이에요. 그래서 ‘나도 이런 생각을 해봤어’라는 생각을 갖고 봐 줬으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 일부러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에서 촬영하기도 하죠. 실제로 많은 분들이 ‘내가 아는 곳이다’, ‘우리 학교다’라고 말하기도 하세요. 이런 것이 어떻게 보면 제가 작품을 만들 때 한국을 배경으로 할 때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라고 생각해요. 이런 요소를 많이 유의해서 봐 줬으면 좋겠어요.

 본인의 슬로건이 ‘아이처럼 생각하자’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슬로건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루는 제가 버스를 타고 외출하는 데 이어폰을 집에 두고 왔었어요. 이동하는 시간동안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데 그땐 멍하니 앉아있게 됐어요. 그래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사람들이 모두 핸드폰만 보고 있더라고요. 정말 삭막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 작품을 통해 이 삭막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싶어 그때부터 아이처럼 생각하려고 해요.

장보민 기자, 지민선 기자  jbm3905@ynu.ac.kr, jms5932@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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