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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건 감독이 원하는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다
  • 장수희 기자, 홍정환 준기자
  • 승인 2016.09.26 18:14
  • 호수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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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건 감독이 원하는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다

 조그만 공간에서 대구 지역의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장우석 감독이다. 그는 현재 수성구 지하의 ‘물레책방’이라는 헌책방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가 어떻게 지역문화기획자가 됐는지, 지역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들어봤다.

 본인의 전공인 정치외교학과 문화운동가, 감독이라는 타이틀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요.
 군대에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했었어요. 당시 대중문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기자가 되고자 했고, 언론고시를 준비하려 했죠. 그러나 제대 후 우연히 한 선배의 부탁으로 단편 영화 음향 보조로 일을 하게 됐어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영화에서 감독이 원하는 존재를 영상 속에서 구현할 수 있음에 매력을 느꼈고, 그때부터 문화나 영화 쪽으로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죠.

 영화 분야와 관련한 공부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6개월 정도 디지털 영상 편집을 따로 배웠어요. 그렇게 졸업 작품을 만들었고,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했어요. 또한 소수지만 대구 지역에도 영상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 그 친구들과 소통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배우기도 했죠.

 영화를 제작하면서 본인이 가장 만들고 싶었던 장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같은 무거운 잔혹 영화에 관심이 있어요. 이런 영화로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메시지를 던져 주는 것이죠. 지금도 그 꿈은 간직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구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주로 작업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제가 살고 있는 대구에 관련된 내용을 촬영하고 편집하면서 ‘아, 대구에 이런 것도 있었구나’ 하고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대구의 수많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본인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이들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이 보람 있었어요. 서울에서 아무리 좋은 감독님이 내려와도 저보다는 잘 알지 못하잖아요. 내가 나고 자란 곳의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좋았어요.

 영화를 제작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먼저 부산 지역에 관련된 것을 말씀드릴게요. 부산의 경우, 큰 영화제가 지속적으로 개최되어서인지 영화에 대한 인식이 대구보다 개방적이에요. 제가 특정 장소에서 영화를 찍고 싶어 관련 기관에 요청했을 때도 부산은 협조적이었으나, 대구는 그렇지 않았죠. 졸업 작품을 촬영할 당시, 동대구역 지하철에서 배우가 계단을 올라오다 살인마를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찍고 싶었어요. 그런데 동대구역 관계자들과 마찰이 있을 것으로 예상돼 도둑촬영을 했죠. 그런데 촬영이 시작되자 현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를 본 직원들이 우리를 발견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촬영이 끝나자 박수를 쳐 주시며 ‘재밌다’, ‘열심히 하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당시 첫 연출작을 찍는 것이었는데 재밌었던 작업 과정이라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2000년대 중·후반에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가 이슈가 되면서, 이를 규탄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진 적이 있어요. 이때 일본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대구의 세 단체와 함께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순례 당시 만난 한 일본인은 ‘위안부 할머니의 일은 일본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 말을 듣고 ‘일본인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분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위와 같이 현장 속에서 생활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죠.

 현재는 수성구에서 ‘물레책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대구의 첫 복합문화공간으로 주목받았는데요. 어떤 곳인가요?
 이 헌책방이라는 공간은 영화도 볼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고, 모임도 할 수 있어 언론사에서 붙인 이름이 ‘문화복합공간’이에요. 자체적으로 공연을 하기도 하고, 공간을 필요로 하시는 분께 빌려드리기도 해요. 쉐어링의 개념과 비슷하죠.

 ‘물레책방’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앞으로 나이가 들면 책방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당장의 계획은 없었어요. 이 건물 2층이『녹색평론』이라는 잡지를 만드는 출판사예요. 그런데 한때 그곳에서 출판업을 하시던 분들이 뿔뿔이 흩어지셨어요. 그런데 1년 후, 귀농하셨던 편집장께서 대구로 복귀하시면서 제게 이 건물의 지하가 비어 있는데 ‘평소에 하고 싶었던 헌책방을 하면 출판사와 더불어 시너지가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죠. 그것이 계기가 됐어요.

 언제부터 헌책을 읽고 수집하기 시작하셨나요?
 영화감상 외에 독서도 좋아해요. 그래서 책을 수집했어요. 대학시절 도서관에서 장편소설을 하루 종일 읽곤 했는데, 그 책이 제 것이 아니다 보니 잘 읽히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내 책’을 사서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그런데 가난한 대학생이다 보니 단순히 싼 가격으로 책을 사보겠단 생각으로 헌책방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다니다 보니 헌책방이 가진 매력이 엄청나더라고요.

 수많은 헌책방을 다니셨는데, ‘물레책방’을 만들 당시 모티브가 됐던 곳이 있나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곳이었어요. ‘물레책방’과 비슷해요. 그 곳도 지하에 30평 남짓한 공간에 무대와 스크린이 있어 공연도 할 수 있는 곳이었죠. 독특했던 건 책꽂이에 바퀴를 달아 행사 때마다 공간 배치를 바꿀 수 있었던 점이었어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어요.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헌책방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취향의 공동체’를 형성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제가 직접 공연이나 콘서트를 기획했는데, 이제는 찾아오시는 분들께서 직접 재즈 모임, 음악 감상 모임, 글쓰기 모임 등을 가져서 이 공간을 더 의미있게 만들어 주셨죠.

 요즘 북카페로 활용 가능한 책방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이 책방을 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요. 책방을 여는 것이 하나의 추세가 된 듯해요. 소박하지만 본인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하나의 트렌드로 형성된 셈이죠. 헌책방이 늘어나는 것은 그 트렌드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물레책방’을 찾는 연령대는 어떠한가요?
 전통적인 헌책방을 찾는 어르신 분들이 오시기도 하시고, 식음료를 판매하다 보니 동네 아주머니들과 아이들이 오기도 해요. 인디밴드 공연도 하기 때문에 젊은 분들도 오시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오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이 공간을 가장 많이 찾는 분들은 20~30대의 여성이에요. 이러한 공간이 여성들의 취향을 저격했나 봐요.(웃음)

 ‘물레책방’에서 북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이전에는 콘서트가 높은 연단에서 저자가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강좌 같은 형식이었지만, 요즘에는 소규모 공간 내 가까운 거리에서 저자·강연자와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인 것 같아요. 지금 사람들의 취향은 다양해졌지만, 대구에는 그 취향을 소화할 수 있는 공간이 적은 것 같아요. 그래서 소소하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얘기를 할 수 있는 소규모 모임을 많이 만들어 가고 있어요.

 대구의 지역문화운동가로서 대구의 문화는 어떤 것 같나요?
 대구는 문화예술의 도시, 패션의 도시라고들 많이 말하죠. 이중섭과 같은 예술가들이 피난을 오면서 다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사색하는 등 문화 활동이 많이 이뤄졌어요. 그런데 근래 들어 예술가들의 이러한 활동이 뜸해지고 있어요.

 대구 지역의 예술에 관련된 문제 중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대구의 예술인 총연합회가 세금을 받아 활동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젊은 예술인들을 양성하지 않고 본인들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기에 급급한 것 같아요. 과거 이야기만 하고 대구 현대문화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워요. 젊은이들에게 세금의 일부를 지원한다면, 훨씬 더 많은 문화·예술이 발전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문화를 대하는 대구사람들은 어떠한가요?
 유명한 강좌가 열린다고 하면, 강연장이 꽉 차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부유층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의미있는 소규모의 작은 문화행사보다는 ‘캣츠’ 같은, 외부에서 가져온 크고 유명한 공연에만 관심을 갖죠. 예술을 향유하는 분들의 모습이 상당히 기형적인 것 같아요.

 독립영화 감독으로서 그리고 문화운동가로서 가장 아쉬웠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젊은 예술가들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바람으로 시작한 대구예술발전소의 ‘만권당 프로젝트’가 있어요. 2억 정도의 예산을 들여 대구의 예술가들과 수시로 네트워킹·협업하고, 서로의 예술분야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기능은 사라지고 단순한 도서관처럼 돼버렸어요. 그 당시에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도 광고가 될 만큼 화제였고, 트렌드에 맞는 프로젝트이기도 했어요. 그러나 결국 2개월 만에 미완성 프로젝트로 끝나게 됐어요. 이 프로젝트가 많이 아쉬웠어요.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가 만든 영화나 공간을 좋아해 주는 분을 만날 때에요. 물레책방을 통해 이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분들이 직접 공간을 만들어 나가다 보니, 제게 있어서는 그런 분들이 소중해요. 또한 6년의 시간 동안 만난 분들 중 작가도 있고, 대구에 사는 예술가 그리고 고등학생도 있었어요. 이처럼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해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이런 여러 가지 순간들이 제겐 보람이 돼요.

 대학생 시절 어떤 미래를 꿈꾸고, 어떤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셨나요?
 제가 어릴 때는 학생들이 서울을 가거나 유학을 가는 것이 추세였다면, 요즘은 조금 바뀐 것 같아요. 지역에도 충분히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워크숍이나 아카데미가 있어요. 청년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교육문제가 아니라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이에요. 저도 미래가 불확실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죠. 영화감독 지망생은 수천 명이고, 단편 영화를 찍는 사람은 수백 명이에요. 또 더 큰 영화를 준비하는 사람이 수십 명이나 되니 성공할 확률은 아주 낮았어요. 저는 대학생일 때 어떤 사람이 될지 몰랐지만, 양복 입고 넥타이 매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았어요. 틀에 박힌 생활이 싫었거든요. 성공에 대한 기대보다는, 소박하지만 내가 생활할 만큼 돈을 벌며 친구들과 술도 한 잔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과 같은 삶이 아닌,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 것 같아요.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뜻인가요?
 어차피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시기라면, 이때의 위기가 기회가 돼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 ‘취향의 공동체’라는 것이 생기더라고요. 공동체로 만난 사람들이 저를 지지하고 도와줬죠. 누군가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결국 제 생각에 지금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길이 생기는 시기라 생각해요.

 앞으로 본인의 꿈이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취향의 공동체를 가진 분들이 모여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로써 문화공간이 바이러스처럼 동네별로 모두 다양하게 생겨나면 좋을 것 같아요. 거대한 축제보다 소소한 마을 축제가 더 유익하다고 생각해요.

독자들의 ‘나도! 나도!’

 서울에서 영화 관련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다시 대구로 돌아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서울에서 연출 막내로 일하고 있었을 때,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분이 연출 막내로 있는 것을 봤어요. 그걸 보면서 ‘나도 계속 막내 언저리에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대구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영화와 관련한 일을 하는 친구들을 모아 팀을 꾸렸죠. 지체될 수밖에 없는 서울의 환경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어요. 제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셈이죠.

 대구에 관련한 이슈나 위안부 등 사회적 소재로 영화를 제작했는데, 감독한 영화 중 학생들이 꼭 봤으면 하는 영화가 있나요?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영화예요. 대구를 배경으로 한, 지적장애인에 관한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였는데, 장애인에 관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영상제작에 참여했어요. 우리는 흔히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일반인’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비장애인’이라고 하는 것이 옳아요. 비장애인은 예비장애인이라는 뜻이죠. 우리가 언제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복지가 잘 확충돼 있어야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더 나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였었는데,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보람 있던 작업이었고, 지적장애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단편 다큐멘터리에요.

장수희 기자, 홍정환 준기자  j20915@ynu.ac.kr, mk36604@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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