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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을 모두에게 알리는 것이 꿈이에요’
  • 조규민 기자
  • 승인 2016.10.10 18:17
  • 호수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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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의 샛별, 박규리를 만나다.]


 우리 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해 사람들에게 국악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국악인으로 활동하다 현재 트로트 가수로 활동중인 박규리 씨(본명 박강희)다. 최근에는 수성구 홍보대사로 발탁돼 대구 출신의 가수로서 우리 지역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국악인이 되고 싶어 하던 그의 국악인으로서, 또 트로트 가수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사진제공 박규리


우리 대학교 국악과에 입학을 하셨습니다. 처음부터 국악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인가요?
 어릴 때부터 국악인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국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국악을 했던 외삼촌 덕분인 것 같아요. 아주 어릴 때부터 외삼촌의 국악을 듣고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를 권유하셨어요.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국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에 결국 국악을 선택하게 됐죠. 그때부터 외삼촌이 운영하는 국악 학원에서 배우기도 했어요. 그러다 결국 대학에 입학할 때도 국악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입학하게 됐어요. 국악과에 들어오기 위해 최대한 많은 국악을 듣고, 공연도 보러 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들으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대학 재학 중에도 국악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국악인으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어떤 무대인가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국악 활동을 시작했어요. 대구시에서 열렸던 유니버시아드 대회 개막식 공연, 청와대 초청공연 등 많은 무대가 기억에 남지만, 무엇보다 재학시절에 도립악단 사람들과 함께 무대에 섰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아쟁’이라는 악기를 전공했지만, 국악 노래에 관심이 많아 민요를 배웠었어요. 당시에도 도립악단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었죠. 서양음악, 동양음악, K-pop과 같은 장르들과 국악을 섞은 ‘퓨전 국악’이란 장르를 했었는데, 무대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하며 희열과 기쁨을 느꼈어요.

 국악인으로 활동하며 많은 곡을 부르셨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꽃분네야’라는 곡이 기억에 남아요. 한 아이가 전쟁에서 엄마를 잃었는데, 엄마를 그리워하며 노래를 부른다는 내용이에요. 이것 역시 퓨전 국악이었어요. 국악은 한을 표현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어서 한을 품은 곡이 많아요. ‘꽃분네야’라는 곡은 이러한 한을 적절히 풀어낸 곡이라 이곡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사랑의 아리랑’이 첫 데뷔곡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인에게 있어 ‘사랑의 아리랑’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곡인가요?
 국악을 전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퓨전 국악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내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는 않았어요. 퓨전에 대한 호감도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제 마음 속에는 가장 큰 작품이었다 생각해요.

 마루 예술단을 창단해 많은 공연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루 예술단을 창단한 계기는 무엇이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국악교육대학원을 다니면서 교육학을 전공했었어요. 교사자격연수 강의에서 ‘우리국악의 이해’라는 강의를 한 적 있어요. 그런데 강의를 하다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사람들이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국악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하지만, 서서히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죠. 그래서 마루 예술단을 만들어 예술단과 함께 공연을 다니면서 우리 국악을 알리려 했어요. 강의 때문에 국악 예술단을 만든 것이죠. 큰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많은 공연을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무대에 설 기회가 생겼어요. 그런 점 때문에 더 즐거웠던 것 같아요.

 몸이 좋지 않아 쓰러진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나요?
 국악 강의를 다니며 강사들을 관찰해보니 대부분 유명한 연예인 강사들이 강의할 때 사람들의 집중도가 높았어요. 저도 최선을 다해서 강의를 하고, 직접 연주를 하기도 했지만 연예인 강사를 따라가기는 힘들었죠. 당시 국악과 같은 순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돈을 적게 받지?’라는 고민도 들었어요.

 그러다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당시 뇌출혈이었는데, ‘이렇게 죽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죽음 앞에 다다르니깐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오히려 ‘뭐든지 해보고 죽자’는 용기가 생겼어요. 만일 아프지 않았다면 이러한 생각을 못했을 것이고, 또 다른 도전을 못 했겠죠. 힘든 시기였지만 새로운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했던 순수예술, 대중음악에 대한 고민들과 뭐든지 도전해보자는 용기가 저에게 연예계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준 것 같아요.

 국악인으로 활동하며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나요?
 많았어요. 악기를 잘 다뤄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지만 국악세계의 서열과 어떠한 단체에 들어갔을 때의 텃세에 대한 부담도 있었죠. 무엇보다 다른 음악인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었어요. 그러나 그럴 때 마다 멋진 국악인이 된 제 모습을 상상하면서 견뎌냈던 것 같아요.

 현재 한국의 국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가 국악을 대하는 자세에서 아쉬운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정말 안타까워요. 사실 제가 강의를 다니기 시작한 이유도 우리나라의 국악 때문이에요. 우리나라 7차 교육 과정 이전에는 교과서에 국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적었어요. 반면 이탈리아 가곡, 스코틀랜드 가곡과 같은 곡들은 많이 소개됐죠.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는 사실 역사적인 이유도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일제 식민지를 겪으면서 일본이 우리에게 국악은 천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도 있어요. 오히려 우리가 국악을 천시해 온 거죠.

 그러나 지난 2004년에는 아리랑이 유네스코에 중국민요로 등록될 뻔 한 적도 있어요. 최근에는 ‘전 세계의 아름다운 음악’에 아리랑이 1위에 선정되기도 했었죠. 오히려 다른 나라에선 국악이 아름다운 곡이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죠. 우리 스스로가 국악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국악인으로 활동 했지만, 최근에는 국악트로트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악인에서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악이나 오케스트라와 같은 순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사회에서 순수 예술이 놓인 현실이에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보다 순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인지도가 적기 때문에 수입도 더 적죠. 심지어 순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무대에 설 기회도 많지 않아요. 이에 대한 회의감을 많이 느끼곤 했죠. 이런 고민들 때문에 트로트 가수가 꿈은 아니었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좀 더 높은 트로트를 선택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국악트로트 가수로 활동 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트로트가수로 활동하고 있죠. 국악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며 국악을 알리고 싶었지만,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트로트에 집중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저를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송 등에 출연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에도 많이 나가려해요. 나를 알리고, 유명해져야 국악트로트나 국악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줄 것 같기 때문이에요.

 국악에서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며 많은 노력을 했을 것 같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노래 장르에 도전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어요. 당시 연예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그때를 다시 떠올리면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최근에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니 서로간의 경쟁이 심해 더 힘든 것 같아요. 방송에 한번 출연하는 것도 아주 어렵죠. 용기만 가지고 도전했기 때문에 그 당시에 힘든 점은 없었어요.

 무대에서 많은 공연을 한 만큼, 에피소드도 다양할 것 같습니다. 무대에서 실수하신 적은 없나요? 그럴 때는 어떻게 대처 했나요?
 MBC ‘가요 베스트’라는 프로그램에서 사회를 본 적 있어요. 사회를 보던 중, 표준어를 써야 하는데 사투리를 써버리고 말았죠. 그 때 너무 당황했었어요. 하지만 기지를 발휘해서 일부러 사투리를 쓴 척했죠. 웃기려고 한 것처럼 말이에요.

 최근 ‘진짜 사나이’에 출연하는 등 TV프로그램에 자주 출연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연예계 활동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저를 알리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방송이라면 어디든 나갈 예정이에요. 음악프로그램이든 예능프로그램이든 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해보고 싶어요.

 현재 트로트가수로 활동하며 힘든 점은 없었나요?
 두 가지가 있었어요. 먼저 국악과 트로트는 정말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국악은 무대에서 말을 하지 않아요. 커튼 콜을 할 때만 인사를 하죠. 하지만 트로트는 입장하면서 부터 “여러분 안녕하세요”와 같은 다양한 멘트를 해요.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국악처럼 무대에서 우아한 척만 하다가는 트로트 세계에선 살아남을 수 없는 거죠. 이런 국악과 대중음악과의 차이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여자랍니다’, ‘주세요’를 준비할 때였어요. 젊은 작곡가가 작곡한 곡들인데, 제가 가진 국악의 기교 같은 것을 빼기를 원했죠. 발라드처럼 말이에요. 작곡가에 맞춰 기교를 빼려 하다 보니 노래 중에 음 이탈이 나기도 해서 힘들었어요. 그래서 다음 곡인 ‘당신은 쿵 나는 짝’을 녹음할 때는 제 느낌 그대로 불렀어요. 그 전의 곡이 아쉬운 것은 제 색깔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KBS 근로자 가요제’를 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당시 EXID와 같은 유명한 아이돌 그룹들이 나왔었죠. 그런데 트로트 가수는 저 혼자였어요. ‘그래서 트로트로 과연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관객들이 박수를 치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트로트가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는 나쁘지 않구나!’라고 생각했죠.

 대구 출신의 가수라서 대구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데, 대구에서 어떤 가수로 기억에 남고 싶은가요?
 대구의 대표적인 인물로 남고 싶어요. 대구에는 배우 손예진 같이 유명한 사람도 있지만, 가수로는 유명한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가수로서 알려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현재도 서울에서 많은 활동을 하지만 저는 여전히 대구에 살고 있어요. 무늬만 대구 사람이 아니라 정말 대구에서 살고 있고, 대구를 위해 홍보를 열심히 했던 가수. 그런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어요.

 국악과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국악을 알리기 위해선 퓨전 국악도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통 국악을 하는 사람들은 퓨전국악을 배척하기도 해요. 그러나 자기만의 창작곡도 만들어 보는 등 국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정해진 곡에만 그치지 남들이 하지 않는 국악을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대학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대학교는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수 있는 학교라 생각해요. 시야를 넓게 가져서 대구라는 지역에서만 그치지 말고 폭 넓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영대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독자들의 ‘나도! 나도!’]

 

 본명은 박강희지만, 박규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PSY의 이름을 지어 주신 도사님께서 제 이름을 지어 주셨어요. 제 본명이 연예인을 하기에는 좋지 않은 이름이라고 했었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질문 하니 2개의 이름을 주셨어요. 하나는 ‘박건의’라는 이름이었고, 하나는 지금의 ‘박규리’였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이왕 시작하는 데,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결국 바꾸게 됐어요.

 추천해주고 싶은 트로트곡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주현미 선생님의 ‘또 만났네요’를 추천해주고 싶어요. 선생님의 곡들은 간드러지고 부드러운 느낌이 강해요. 게다가 얇고 청아한 목소리를 가지고 계시죠. 저도 그분처럼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국악과 트로트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국악은 제가 음악을 할 수 있게 이끌어준 원동력이었어요. 앞으로도 핏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트로트는 현재 활동하면서 굉장히 매력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음악 장르에요.

 최근에는 대구 토박이 트로트 가수로서 대구 수성구 홍보대사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성구 홍보대사로서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동치미’라는 TV프로그램에서 “뉴욕에서도 수성구를 안다”고 말한 적 있어요. 이렇듯 방송에서 대구를 여러 번 소개한적 있는데, 이 때문에 수성구에선 저를 홍보대사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방송을 통해서 수성구를 알릴 생각이에요.

조규민 기자  jgm0607@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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