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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손, 대한민국을 덮치다
  • 장수희기자, 곽미경준기자, 박승환준기자, 홍정환준기
  • 승인 2016.11.15 04:43
  • 호수 1631
  • 댓글 0
지난 5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위 모습
직접 쓴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학생들
광화문 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는 모습
한 시위자가 피켓을 들고 울고 있는 모습
지난 4일 한일극장 앞에서 열린 시위
한 고등학생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지난 10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특혜 의혹에서 비롯된 논란은 그의 어머니 최순실 씨가 숨겨진 비선실세였음이 드러나면서 더 큰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최순실 씨가 외교 관련 기밀문서를 미리 열람하고,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하는 등 국정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져 대한민국은 충격에 빠졌다. 이에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오히려 더 큰 분노를 느낀 국민들은 전국 곳곳에서 시국선언과 동시에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대통령의 고향, 대구에서도 촛불을 밝히다=“대구는 박근혜의 도시가 아니다!” 비선실세의 존재가 드러나고 국정을 농단했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박근혜 대통령의 고향이자 여당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가 진행됐다. 지난 4일 오후, 대구 중구 CGV(대구한일) 앞은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들의 행렬은 한일극장 앞에서부터 대구백화점 너머까지 이어졌고, ‘박근혜는 물러가라’, ‘새누리당은 해체하라’라고 적힌 피켓과 인쇄물이 도처에 흩날렸다. 이를 지켜본 대구 시민들은 현장에서 시위에 동참하고 큰 목소리를 내며 시위대와 뜻을 함께했다. 이날 시위대는 경대병원에서 반월당을 지나 한일극장으로 돌아오는 행진 퍼레이드를 진행하며, 정부에 등을 돌린 대구 시민들의 의지를 드러냈다.

 서울 도심서 울려 퍼진 15만 명의 외침=지난 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故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을 시작으로 약 8시간에 걸쳐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가 진행됐다.

 한 학부모는 “내 자식과 국가를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이런 나라를 자식에게 물려주게 돼 부끄럽고 화가 난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가 아닌 ‘퇴진’해야 한다”고 외쳤다. 국민들의 발언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곧이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행진이 시작됐다.

 시위 행렬의 끝자락이 보일 때쯤 그 뒤를 잇는 일군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중·고등학생들이었다. 교복차림에 앳된 얼굴을 한 그들은 “중·고생이 일어난다!”고 외치며 행진에 동참했다. 그중 한 고등학생은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입학부터 출석 인정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서 특혜를 받은 정유라 씨에게 허탈감을 느껴, 이 사태에 그냥 있을 수 없어 거리로 나왔다”고 전했다.

 행진이 끝나고 날이 저물자 국민들은 촛불을 켜 그들의 의지를 드러냈고, 그 불빛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웠다. 피켓에서 촛불시위로 이어지며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시위의 열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가 “앞으로도 행진을 멈추지 말자”고 말하며 12일에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민중총궐기 참가를 북돋웠다.

 시위 막바지 무렵, 전광판에 박근혜 대통령의 2차 대국민 사과 영상이 나오자 욕설과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고, 동시에 일부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국민들은 한 목소리로 ‘하야’를 외쳤고, 이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불의와 싸울 것을 다짐하며 시위는 끝이 났다.

 이곳에 모인 국민들의 사정은 각각 다르지만 그들이 분노한 이유는 같았다. ‘돈도 실력’이라는 철없는 말에, 민주국가를 본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용하고 대통령을 조종해 나라를 뒤흔든 ‘일반인’에게, 결단력 없었던 ‘지도자’에게 국민들은 분노했고 거리로 나섰다. 이 모든 일이 정리될 때까지 국민들의 촛불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시국선언의 물결, 대학가를 휩쓸다

 바야흐로 시국선언의 계절이다. 100여 개가 넘는 학교에서 시국선언을 했으며, 대규모 집회에 참가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일었다. 민주화 이후 20대 투표율이 점차 감소하고, IMF사태 이후 취업에 몰두하게 된 대학생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라 일컬어졌다. 그러나 전국각지에서 대학생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대학 구성원, 시국을 말하다=지난 27일 성균관대 교수의 시국선언에 이어 서울대, 전남대, 숙명여대 등 많은 대학교의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했다. 서울대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인 700명이 넘는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인 대구·경북지역의 교수들도 함께 일어섰다. 지난 3일 경북대 교수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것이다. 박진완 경북대학교 교수회 부의장은 “이번 기회로 정치적 의사 표현이 자유로워지고, 국민 주권 실현 요구가 강화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몇몇 대학들은 학교 특색에 맞는 시국선언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28일 한국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총학비대위)는 본관 앞에서 영어, 스페인어를 포함한 10개 언어로 번역된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 이슬 한국외대 총학비대위원장(스칸디나비아어학과4)은 “시국선언문에 사용된 단어가 외국인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외국어로 번역해 시국선언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외국에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31일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총학생회는 시국선언문 발표와 함께 ‘시굿선언’이라는 이름의 공연을 펼쳐 화제가 됐다. 황예정 한예종 총학생회장(음악원 기악과4)은 “전통문화인 굿이 언론에서 박근혜 대통령 의혹과 관련해 부정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시굿선언’을 기획하게 됐다”고 전했다. 시국에 대한 비판과 굿의 예술적 성격을 강조하고자 새로운 방식의 시국선언을 선보인 것이다.

 함께 하는 것이 힘을 키우는 것=과거 4·19혁명 당시 전국 대학교수 대표들의 교수단시국선언문 발표 다음 날,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결정했다. 오늘날 대학 구성원들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논란 해결을 위해 타 기관과 공동 시국선언을 발표하거나, 집회를 주도하는 등 집단적 움직임을 형성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단발성 가두시위에 그쳤다면 현재는 시국선언, 시위, 행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장기간, 대규모 시위를 진행하는 것이다. 조영수 민주언론시민연합 협동사무처장은 “시국선언, 시위 등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경우 같은 생각을 가진 개개인이 많이 있더라도 함께하지 않으면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며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정지은 사회평론가는 “구성원들이 대규모 집단으로 행동하고 원하는 바를 얻어낸 경험은 개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했다. 사회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에는 개인의 노력보다는 집단의 행동이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 경쟁에 치우쳐진 대학의 분위기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 구성원들은 이번 사태에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며 사유화된 권력에 분노했고, 주권을 상실한 민주주의에 슬퍼했으며, 권력형 비리를 규탄했다. 정국이 수습돼 더는 분노하지 않게 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 주권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시국에 우리 대학교는?

 전국 곳곳에 시국선언 물결이 번짐에 따라 우리 대학교에서도 시국선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난 7일 우리 대학교 학생 443명을 대상으로 앙케이트를 실시한 결과 ‘현재 대학가에서 이뤄지고 있는 시국선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86%(382명)의 학생이 ‘찬성’했다.

 우리 대학교 시국선언의 시작=지난달 31일 ‘영남대 학생 시국선언단’이 우리 대학교 정문에서 최초로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박근혜는 하야하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은 ‘최순실 게이트’를 비판하는 내용과 새누리당 및 보수 언론의 책임을 묻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들은 “이번이 마지막 외침이 아니다”라며 학생들의 참여를 북돋웠다. 이에 이승렬 교수(영어영문학과)는 “학생이 먼저 용기를 낸 것이 자랑스럽고, 한편으론 먼저 행동하지 못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또한 ‘영남대 학생 시국선언단’은 오프라인과 SNS를 통해 뜻을 함께할 학생들의 서명을 받았다. 현재까지 약 700명의 학생이 서명했으며, 박근혜 정권이 퇴진할 때까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부끄러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이어 지난 8일, 우리 대학교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교수가 중앙도서관 서편 광장에서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 17명의 교수가 발의단을 구성해 시국선언문을 작성한 뒤 모든 교수에게 메일로 시국선언문을 전송해 170명의 교수가 뜻을 함께했다.

 교수들은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최태민 일가의 부정과 비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기에 더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시국선언문 낭독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우리 대학교 시계탑까지 행진했다. 이승렬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대학교 재단과 직·간접적 연관이 있어 시국선언이 조심스러웠으나,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1일 대구 집회와 12일 민중 총궐기에 동참할 예정”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한편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지켜본 이효성 씨(정치외교3)는 “교수와 학생이 힘을 합치니 발언에 더욱 힘이 실리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힘을 모아 시너지 효과를 냈으면 한다”고 전했다.

 드디어 움직인 총학생회=총학생회는 지난달 27일 SNS를 통해 이와 관련한 성명서를 게시했으나 학생들은 소극적 대응이라 비판하며 더욱 강력한 의견 표명을 요구했다. 그 후 약 10일 뒤인 이달 9일 총학생회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에 곽병철 총학생회장(신소재공4)은 “학생들의 의견이 중요해 의견을 수렴하다 보니 시간이 걸렸다”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35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추미석 씨(국어국문학과·야 95학번)는 “과거에는 총학생회가 가장 앞장 서 주체적인 모습을 보였다. 과거와 현재는 다른 사회적 문제를 직면하고 있지만, 총학생회의 의미를 재고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승렬 교수 역시 “총학생회의 상황을 이해하지만, 비판의 목소리와 저항의 목소리를 잘 수렴하는 것이 그들의 책무라는 점에서 조금 늦은 대응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총학생회 측은 시국선언문 발표와 관련한 학생들의 의견 수렴 결과 찬성 측과 반대 측의 비율이 약 9대1이었기에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부 학생들은 ‘교수들의 시국선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기하기 했으나, 총학생회 측은 총학생회의 시국선언 발표일은 미리 계획돼 있던 것이라 밝혔다.
 학생의견수렴과정에서 일부 학부(과)는 메신저 투표를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다. 이에 이연진 씨(언론정보3)는 “총학생회가 시국선언문을 발표한다는 말만 들었을 뿐, 의견수렴을 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곽병철 총학생회장은 “모든 학생의 의견을 들을 수 있으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기에 메신저 투표를 통해 최대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한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곽병철 총학생회장은 “지성인인 만큼 더 깊게 생각하고 말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며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비난을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어 추후 계획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과거, 그 시절의 시국선언은?

 최근 우리 사회는 역대 최대 규모의 시국선언을 외치는 등 너나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례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시국선언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우리 대학교 동문인 추미석 씨(국어국문학과·야) 95학번), 천기창 씨(경영학과 96학번), 이창욱 씨(경제학과·야 00학번), 조석원 씨(사학과 01학번), 박상오 씨(법학과 04학번)와의 좌담회를 통해 그 시절의 시국선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과거의 시국선언은 어떤 모습이었나?
 추미석: 1990년대 후반에는 사회와 정권의 부조리에 대한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이 일어났다. 그 당시에는 5·18 민주화 운동의 주범인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이 있었다. 또한 우리 대학교 건물 입구와 중앙도서관 및 과학도서관에 관련 대자보가 붙었다. 이처럼 사회와 정권의 부조리에 대한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2002년에는 미군 탱크에 여학생이 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2008년 광우병 사태 만큼 큰 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 약 8,000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대구백화점부터 대명동까지 행진하며 시위했다.

 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학내 문제에 대한 시국선언도 있었다. 80년대 초반 우리 대학교에서 박근혜 재단 이사장과 최태민 일가를 몰아내기 위해 학생과 교수, 교직원 모두 시국선언과 시위를 했다. 학교 구성원들이 학교에 주인의식을 갖고 학내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했다.

 천기창: 그렇다. 뿐만 아니라 90년대에는 ‘대학생’이라면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과거에는 현재보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추미석: 공동체 의식이 강했다. 학생들이 학생회실에 부담없이 출입하면서 토론문화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사회 이슈에 대해 논의했다. 그렇기에 시국선언을 약속하지 않아도 많은 학생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됐다.

 천기창: 당시 학생들은 모여서 얘기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표출했다. 스마트폰과 같은 소통 수단이 부족했지만, 직접 얼굴을 맞대고 소통했다.

 이창욱: 2007년은 조금 달랐다. ‘대학생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스펙 쌓기를 도와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 분위기가 지금까지 이어져왔기 때문에, 사회 문제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이 낮아졌다고 생각한다. 대학생들의 관심이 낮아져서 정부는 사적 이익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해왔고, 이것이 발각돼 현재의 상황이 발생했다.

 시국선언에 앞서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박상오: 스스로가 나라와 학교의 주인이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과거 박근혜 재단을 몰아낸 것도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 의식을 갖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 학생들이 자치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 학교가 학생 자치 공간을 뺐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회가 학생들에게 스펙 쌓기와 취업을 강요해 사회와 학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라와 학교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석원: 현재 대학생들은 사회적 현실이나 그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다. 좀 더 용기를 갖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길 바란다. SNS를 통해 사회문제를 알리는 게시물을 공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해 중·고등학생들도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데, 성인이라면 자신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맞서야 한다. 자신이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작은 것에서부터 점진적으로 용기를 키워가길 바란다.

장수희기자, 곽미경준기자, 박승환준기자, 홍정환준기  j20915, hd32222487, sh90822, mk36604@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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