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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로를 거닌 사람] 어려움을 극복하고 꿈을 이룬 교사
  • 박승환 기자, 최준혁 기자
  • 승인 2017.03.06 19:11
  • 호수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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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승환 기자


 누구보다 장애인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교사가 되고자 한 신근섭 씨(특수체육교육03). 우리 대학교 특수체육교육학과에 재학하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현재 성보학교 특수교사가 됐다.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배려하는 그를 만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과 특수교사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 대학교 특수체육교육학과에 입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방학 때 장애인 관련 단체에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어요. 비장애인 학생들은 다 같이 체육 활동을 하는데, 몸이 불편한 친구들은 같이 활동하지 않고 물끄러미 보기만 하더라고요. 장애를 가져도 체육 활동은 함께 할 수 있을 텐데,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활동에서 배제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그 후 장애인들도 다 같이 할 수 있는 체육 활동에 대해 고민한 것이 특수체육교육학과에 진학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재학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약 4년간 병원에 있었습니다. 그 후 복학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계기로 복학을 결심하게 됐나요?

 처음엔 막막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꿈을 가지고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이런 상태로 복학해도 괜찮을지 여쭤보기 위해 박기용 교수님(특수체육교육과)께 전화를 드렸어요. 복학에 관한 고민을 심각하게 털어놓는데 교수님께서는, “와. 오면 된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교수님께서 복학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씀해 주셔서 믿음을 가지고 복학을 결심했죠.  

 박기용 교수님의 경우 전동 휠체어를 선물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같은 학과 후배들이 많은 부분을 도와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도움을 준 사람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군가요?

 너무 많아요. 특히 박기용 교수님은 본인의 회갑 비용을 전동 휠체어 구입과 생활비를 위해 쓰라고 말씀하셨어요. 학교를 다니려면 전동휠체어가 필요했는데, 병원비 때문에 집안 사정이 많이 힘들었거든요.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는 후배들이 하루 종일 제 옆을 지켜주곤 했어요. 그 후배들은 형제라고도 볼 수 있죠.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저를 도와줘서 학교생활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과거, 우리 대학교에 장학기금을 전달하는 등 선행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타인에게 선행을 베풀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많은 것을 베풀어야 하는 사람이에요. 학과, 교수님,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겠죠. 혼자 사는 사람은 없지만 그 당시의 저는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거든요. 학과에서 도와주셨으니 저 역시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고 싶어요. 사실 우리 대학교에 많은 기금을 한 것도 아닌데, 관심을 받아서 조금 부끄러워요.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어요.

 자신을 특수교사로 이끈 멘토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박기용 교수님이죠. 교수님이 없으셨다면 학교를 복학하고, 제 꿈을 이루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아요. 제겐 아버지 같은 분이시죠. 교육할 때는 호랑이처럼 무섭지만, 사적으로 만날 땐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대해주세요. 그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에요.

 임용시험은 다른 학생들도 모두 어려워하는데, 그것을 극복하고 꿈을 이루셨습니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손이 불편하니 펜을 잡을 수 없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기억해야 했어요. 그만큼 반복해서 공부해야 했고 시간도 모자랐죠. 공부하면서 제일 힘들었을 때가 눈앞의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지 못할 때였어요. 책을 꺼내주는 사람이 없으면 공부도 할 수 없었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배로 공부하면서 임용시험을 준비했어요.

 임용시험에 합격해 특수교사라는 꿈을 이루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처음에는 복학을 생각지도 않았어요. 복학하면서 임용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 역시도 하지 않았어요.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거든요. 제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데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나 싶었죠. 그러다 4학년 때 현재 제 직장인 성보학교로 교생실습을 갔는데, 지체 장애아 교육기관이다 보니 휠체어 탄 학생들이 많았어요. 교생실습을 나온 대다수의 학생들은 장애 학생들이 어떤 어려움을 가졌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 학생들과 같은 입장인 저는 그들이 겪는 학교생활의 어려움이 피부에 와닿더라고요. 그 학생들도 제 처지를 공감하며 배려해 줬고요. 그때부터 비장애인 교사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제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생실습이 끝나고 난 후, 임용시험을 준비해 특수교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었죠.

 현재 최초의 장애 특수학교인 대구성보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직 특수교사로서 수업은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아무래도 손이 불편하다 보니깐 칠판에 글을 쓰지 못해요. 그래서 파워포인트(PPT)를 만들어 TV와 연동해 원격으로 수업 자료를 보여줘요. 또한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왜?”, “어떻게?” 등의 질문을 자주 해요. 학생들이 생각해보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개방적인 질문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특수체육교육은 본인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숙명이라 볼 수 있죠. 처음 특수체육교육학과에 들어갈 때만 해도 제가 장애를 가질 줄 몰랐어요. 장애를 가지면서 든 생각은 만약 내가 특수체육교육과가 아닌 다른 학과생으로서 장애를 가졌다면 학교로 돌아가기 힘들었겠다 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장애인을 교육하는 학과였기 때문에 복학해서 학교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그 후 특수교사로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자존감 역시 가질 수 있었죠.

 본인이 바라는 특수체육 교사가 되기 위해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공감하고 소통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장애 학생에 대한 이해와, 그 학생이 가진 생각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학생들의 말을 듣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어요. 지적장애나 지체 장애 학생들의 생활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좋아해요. 학생들도 교사가 본인에게 질문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고 했어요. 교사로서 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많이 들어주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에요.

 복학 후, 특수체육교육과 내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고 다른 학우들과 웃으며 지내는 등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이를 극복해냈습니다. 이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고가 난 당시엔 많이 힘들었어요. 저는 장애를 갖기 전엔 긍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장애를 가진 후 우울증에 심하게 빠졌어요. 병원을 옮길 때마다 기존의 병원에서 저를 주의해서 진찰해야 한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학교에 복학하면서 교수님과 학과 후배들이 잘 챙겨줬기 때문에 원래의 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장애로 인한 동정심이 아니라 일반 학생으로서 대해준 것 역시 학과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고요. 또한 특수체육교육학과는 장애인을 가르치는 학과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장애에 대한 배려심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기 때문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자신의 상황을 힘들어하며 꿈을 포기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요?
 
 사람들은 자신의 힘든 상황에 대해 세상 탓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세상 탓을 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이 열심히 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지는 않지만, 내 자신은 분명히 변해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목표를 이뤄간다면 만족하는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교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학생들이 취업, 등록금 등 다양한 이유로 불안할 것 같아요. 하지만 항상 꿈을 잃지 마세요. 맹목적인 최선이 아니라 최종 목적이 있다면, 목표를 세우고, 또 그것을 단계별로 조금씩 해결해 나간다면 행복한 삶을 살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친 기자들의 이야기

 신근섭 동문은 ‘동문’보단 ‘선생님’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분이었다. 처음 약속장소에서 본 그의 모습은 누구보다 밝고 자신감 넘쳤다. 어머님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로 이동하는 그와 대화를 할 때는 친한 선배를 만난 듯이 정겨웠다.

 사실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신근섭 동문을 만나기 전, 무심코 던진 말이 그에게 상처가 돼 인터뷰가 불편하지는 않을까란 생각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그래서인지 그와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신근섭 동문과 얘기를 나누면서 ‘장애인은 약자’란 편협한 생각에 갇혀 있음을 깨닫고 부끄러웠다. 특히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손이 불편해 글을 쓸 순 없지만 다른 사람보다 몇 곱절의 노력으로 임용고시에 합격한 그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음과 동시에 노력하지 않는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다음에 신근섭 동문을 만나게 된다면 ‘죄송하다’와 ‘감사하다’는 말을 진심으로 드리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게 가르침을 준 그와 호형호제하며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박승환 기자, 최준혁 기자  sh90822@ynu.ac.kr, cjh0524@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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