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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세상을 노래하다
  • 최준혁 기자
  • 승인 2017.04.03 15:16
  • 호수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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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세상을 노래하다


 비선실세, 비리, 세월호 사건 등 대한민국의 정치적인 사건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들은 많은 이들을 광장과 거리로 나서게 했다. 비폭력·민주적으로 이뤄진 시위에는 음악이 함께했다. 이처럼 시민들의 마음을 모으고 힘을 주었던 저항문화 속 음악에 대해 알아보자.

 음악은 민중과 살아간다=음악은 시간이 지나며 수없이 변화해왔다. 음악은 종교적인 목적에서 처음 시작되어 이후 오락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고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종교적 성격의『구지가』, 서정적 성격의『황조가』와 같은 ‘고대가요’가 존재했으며, 이후 향찰로 쓰여진 『찬기파랑가』와 같은 향가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불려왔다. 이처럼 음악은 민중들 삶에 녹아들었다. 또한 일상의 고된 노동을 즐기기 위한 ‘노동요’, 지배층의 악행을 고발하거나 사회적 모순을 풍자하는 조선시대의 ‘판소리’와 같은 노래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의 혼란한 시기를 지나 1970년에 이르러 한국 음악의 키워드는 ‘저항’으로 넘어가게 된다. 유신헌법, 군사독재 등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와 맞물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한 반전음악의 창시자 ‘밥 딜런’의 음악이 유입됐다. 많은 대학생들은 이러한 음악가들의 영향으로 사회, 시대에 대한 저항적 가사를 주로 다뤘다. 박홍규 교수(교양학부)는 “1970년에서 1980년까지가 ‘저항문화로서의 음악’이 가장 활성화된 시기였다”고 말했다.

 사회에 외치는 음악의 힘=음악은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등장한 하나의 매개체다. 음악은 즐기기 위한 용도도 있지만 이를 통해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서정적인 목적으로도 쓰이곤 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음악은 사람들에게 공감, 연대감 형성 등의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 이로 인해 음악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지배층을 비판하는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음악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할 수 있는 매개체다.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고, 다양한 목적을 지닌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홍규 교수 역시 “음악은 음악만이 줄 수 있는 결집력이 있다. 그 어떤 예술로도 이러한 응집력을 지니게 할 수 없을 것이다”며 음악이 사람들의 의지를 격양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음악이 사회적 목적으로 사용된 가장 최근의 예시는 촛불집회다. 일회적으로 그쳤던 과거의 촛불집회에 비해 이번에 개최된 촛불집회는 무려 20여 차례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지속성과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돋보였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은 ‘음악의 힘’이 집회 결속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박홍규 교수는 “과거 70~80년대 저항음악이 유행할 당시 학생이었던 세대가 현재는 어른이 돼 집회에 참여했다. 70~80년대에 저항음악을 이끈 가수 전인권과 양희은이 이번 집회에 참여해 노래를 했는데, 이러한 민주화 세대의 결집 과정에서 이들은 민중들에게 큰 힘이 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대구 경북에 울린 저항의 노래=광화문 광장에 울렸던 노래는 전국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부산역, 대전 청사 앞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도 촛불이 켜지고,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는 대구·경북지역도 마찬가지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해당되는 많은 지역예술인이 집회에 참여했으며 그 외에 대중적으로 유명한 이들도 참여했다. 가수 김장훈 씨는 대구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해 “내 고향은 광주도, 울릉도도, 서해안도, 연평도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러한 노랫가사는 지역과 이념을 넘어 모이자는 뜻을 전해 집회에 참여한 민중들에게 큰 호응을 이끌기도 했다. 당시 집회에 참여한 가수 박창근 씨는 “대구 시민들이 그동안 보수 성향의 도시라는 인식 이전에 상식적인 행위, 상식적인 정치문화를 바라는 양심과 소신을 표현해 주셨다고 생각한다”며 “전국을 놀라게 한 대구시민들이 저항음악을 집회무대로 이끌어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대학생과 저항음악의 현황
 

 70년대 대학생에게 있어 저항음악을 노래한 밥 딜런의 음악은 우상이었고, 저항문화는 대학문화의 당연한 부분으로 생각되었다. 이렇듯 번성했던 저항문화와 음악은 현재 대학생들에게서 아득히 잊혀졌다. 이에 본지는 대학문화의 하나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던 저항문화로서의 음악이 쇠퇴한 이유와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짚어봤다.

 대학가에 울리던 저항음악=1970년대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대학생의 시위가 잦았고, 사회적으로는 서구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특히 외국의 통기타 음악과 포크송이 유입되면서 많은 대학생들이 아마추어 음악을 접하고 즐겼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대학생들과 많은 가수들은 정치·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인 ‘저항문화로서의 음악’을 부르게 됐다. 이현 교수(성악과)는 “대학생들이 음악이라는 매개를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활용한 것이다”이라며 “음악을 통해 당시 대학생이 생각하던 정치의식과 저항의식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사라진 문화, 사라진 음악=하지만 한 시대를 대표하던 저항문화와 음악들은 90년대 중반 이후 거의 사라졌다. 현재 저항음악은 인디 문화 중에서도 인디로 취급받으며 노동권 등 투쟁을 위한 노래로 인식돼 그 잔재만이 남게 됐다.

 저항음악이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대학생의 정치의식과 저항문화의 부재에 있다. 과거 저항음악이 유행하던 7~80년대는 대학생이 본인의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고, 시위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시대였다. 그러나 1997년 경제금융위기 IMF가 찾아오면서 대학생들은 점차 정치에 무관심해졌다. 대학생에게 있어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와 취업이 더 큰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에 서정민갑 평론가는 “복지와 가족공동체가 붕괴되면서 대학생들의 삶에 큰 변화가 다가왔다”며 “대학생들이 더 이상 사회·정치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됐다”고 전했다.

 음악이 사회를 노래하는 날까지=‘음악은 우주의 신비한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다.’ 피타고라스학파의 학자 다몬의 말처럼 음악은 음악 그 자체가 지닌 질서와 규칙성을 드러낸다. 음악은 주변의 소리, 인간의 감정과 생각들을 담았으며 어느 순간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음악은 단순한 소리에서 더 복잡한 소리로 변했으며, 음악이 지닌 ‘순수성’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음악은 그것을 통해 사회의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고, 사회를 위한 음악들로 변질된 것이다. 이현 교수는 “음악을 통해 세상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목적이다. 파괴와 폭력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음악의 순수성을 잃은 것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비판적인 성격을 지니는 음악은 오히려 사람들이 그것을 꺼리게 만든다. 따라서 바람직한 저항문화로써의 음악은 사람들에게 많이 불려지고,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한 저항가사의 대표적인 가수 밥 딜런은 시대 저항적이고 비판적인 가사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가 인정받은 이유는 저항적이되 음악 자체의 순수함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홍규 교수는 “음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하되, 상업성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성과 건전함을 갖춘 음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대학생들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비록 불안한 미래와 힘든 현실을 마주하더라도 주변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자기 삶에서 느낀 문제를 개인이 아닌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생각하고, 이를 질문해 보는 음악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대를 뛰어넘은 저항음악

 과거에 울려 퍼진 저항음악은 현대에 들어 새롭게 재해석되어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집회현장에서 ‘민중 엔터테이너’로 불리는 ‘야마가타 트윅스터’와, 싱어송라이터로 꾸준히 활동한 박창근 밴드의 박창근 씨를 통해 저항음악의 과거와 현재를 들어봤다.

 저항음악을 부를 때, 과거와 현재는 환경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인가요?
박창근: 과거에는 저항음악이 통치자에게 용납이 되지 않아 불법으로 간주됐어요. 하지만 저항음악을 통제하면 할수록 더 강해졌어요. 반면 요즘은 저항음악에 대해서 억지로 통제하고 검열하지는 않죠.

 야마가타 트윅스터(이하 야마가타): 과거와 달리 저항음악이 소통될 수 있는 인터넷, 유튜브 같은 채널이 많이 생겨났어요. 그리고 과거에는 저항음악을 부르면 수감시켰어요. 그러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정부가 예술가의 생계를 교묘하게 위협하는 것도 변화라고 생각해요.

 과거 저항음악이 불릴 때와 현재는 주체에서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박창근: 과거에는 사회·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주체가 대학생들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노력이 특히 노래패(동아리)에서 잘 나타났다고 생각해요.

 야마가타: 요즘에는 기존의 민중가요에 더해서 대중가요가 저항음악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그 예시라 볼 수 있죠. 그리고 또 인디 음악가가 저항음악에 참여하는 등 다소 변화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이외에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박창근: ‘대학생’이라는 신분에 대해  가지 생각이 드네요. 대학생을 취업 준비생으로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아쉬워요. 대학생은 큰 학문을 하는 사람이고, 사회는 지성과 포부를 지닌 대학생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대학생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중요해요.

 야마가타: 저항의 주체들이 더 다양해지고 세분화됐습니다. 그러니 좀 더 다양한 음악이, 새롭고 재밌는 저항음악의 주체들이 이 저항의 현장들에 함께하면 좋겠어요.

최준혁 기자  cjh0524@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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