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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달려온 70년
  • 곽미경 기자, 박승환 기자
  • 승인 2017.05.15 22:25
  • 호수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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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학, 영남대학교

 영남대학교는 ‘민족의 대학’을 넘어 ‘세계 속의 대학’을 표방하고 있다. 오늘날의 영남대학교는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의 전통을 계승해왔다. 개교 70주년을 맞아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의 설립과 두 대학의 합병 과정에 대해 알아봤다.

 민립대학인 대구대학과 청구대학=1945년 10월 20일, 최준을 회장으로 경북종합대학기성회가 조직됐다. 1947년 정해붕 외 경북도민 유지의 성금과 이상렬 외 유지의 토지 및 최준의 장서를 기본재단으로 하고, 최준·정해붕·이상렬·이상호·추병화 5명의 이름으로 재단법인 설립인가 신청서를 문교부에 제출했다. 1947년 9월 대구대학이 정식으로 인가됐으며, 10월 정식 개교식을 열었다.

 한편 1948년 경북청년총연맹위원장이었던 최해청이 대중강좌를 개최한 것이 계기가 돼, 대구야간대학기성회를 조직하고 장인환을 회장으로 선임했다. 1949년 경북포화조합 이사회를 개최해 재단법인 청구대학의 설립을 정식으로 결의하고, 1950년 3월 재단법인 청구대학 창립총회가 소집돼 문교부에 인가신청을 했다. 50년 4월 청구대학이 정식으로 인가됐다.

 1951년 국립종학대학 설립계획이 구체화되면서 문교당국이 사립대학 제도를 폐지하고, 학생들을 국립대학에 편입시키고자 했다. 이에 대구대학 이사회는 국립대학에 편입되는 것은 도민들의 지성으로 건립된 민립대학으로서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반대했지만, 국립대학이라는 매력과 병역문제에 대한 불안 등이 작용해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의 일부 학생들이 경북대학교로 편입하기도 했다. 5·16 군사정변 직후 군정에서 발표한 대학정비안으로 대학 폐과·정원 대거감축이 이뤄졌다. 일련의 사건들과 재정적 이유로 두 대학은 운영의 어려움을 겪게 됐다. 1967년 12월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이 합병하는 이사회에서 처음으로 영남대학교 교명이 공식석상에 나왔으며, 재단법인 영남학원이 발족된 후 영남대학교가 설립됐다. 

 최염을 만나다=대구대학의 설립자의 손자이며, 영남대 합병이 논의된 대구대학 이사회에 외부인사로 유일하게 참석한 최염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명예회장을 만나 그 이면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구대학의 설립 과정은 어땠나요?

 1945년 해방이 된 후 뜻있는 분들이 모여 향토 교육 사업을 위해 경북종합대학기성회를 만들었다. 교육이 나라의 근본이 되는 원동력이라 생각하여 기성회를 조직하셨는데, 할아버지가 회장으로 선출됐다. 할아버지가 기성 회장으로서 미군정청에 대학설립 인가신청을 낸 후 통과가 돼 1947년 대구대학이 설립됐다.

 삼성 이병철 회장은 어떻게 대구대학의 운영권을 갖게 됐나요?

 1964년 삼분폭리사건이 일어나자 삼성은 많은 국민의 비난을 받았다. 대구대학 교수로 재직한 신현확이 이병철에게 대학을 운영하면 삼성 이미지 쇄신에 도움이 될 것이라 제안했다. 이병철이 할아버지를 찾아오자 할아버지는 인촌 김성수가 고려대학교를 키운 것처럼 대구대학을 키울 생각이 있다면 맡아 보라고 했다. 이병철은 대구대학을 한수 이남의 가장 좋은 학교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이병철이 삼분폭리로 인한 오명을 벗고자 대학을 운영하는 것이라면 대학을 돈벌이의 목적으로 운영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대학운영권을 내주셨다.

 대구·청구대학 이사회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1967년 12월 15일, 대구대학 이사회와 청구대학 이사회가 각각 열렸다. 그때 대구대학 이사인 할아버지에게 통지하지 않고 결의를 하면 할아버지의 이의 신청에 의해 이사회 결의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었다. 할아버지께 반도호텔에서 이사회를 한다고 보고 드리니까, 이사회를 가기 전에 삼성 본사에 이병철을 만나러 가자고 하셨다. 본사엔 이병철은 없고, 신현확이 있었는데 그는 할아버지에게 “선생님 뜻대로 안 돼서 죄송하지만, 이병철보다 박정희가 학교를 맡으면 더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립학교 이사회 회의 장소엔 이후락, 김성곤 등을 비롯한 문교부의 법무관도 참석한 가운데 회의는 진행됐다. 그렇게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은 합병됐으며 영남대학교가 설립됐다.

영남대학교의 개교 70주년을 축하합니다

70년을 지나오며

1977년, 우리 대학교 개교 30주년 당시 모습이다. 중앙도서관이 준공된 지 약 3년이 지났고, 개교 30주년을 맞아 본관이 준공됐다.
1987년, 우리 대학교 개교 40주년 당시 모습이다. 개교 40주년을 맞아 종합강의동이 준공됐다.
1997년, 우리 대학교 개교 50주년 당시 모습이다. 본관 앞 정원을 가꿔 개교 50주년을 기념했다.
2007년, 우리 대학교 개교 60주년 당시 모습이다. 중앙도서관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올해 개교 70주년을 맞은 우리 대학교의 모습이다.. 지난 70년간 ‘민족중흥의 새 역사창조’라는 창학정신을 기반으로 지역과 나라 발전에 기여하는 동량을 양성했다.

곽미경 기자, 박승환 기자  hd32222487@ynu.ac.kr, sh90822@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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