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7.12.12 화 10:28
상단여백
HOME 천마문화상
[제48회 천마문화상 - 대상(소설)]외벽(外壁)
  • 박수진(협성대학교 문예창작학과4)
  • 승인 2017.12.02 14:26
  • 호수 1640
  • 댓글 0

 한 시간째 그와 나는 길을 헤매었다. 그는 말없이 스마트폰 화면만 응시했다. 그의 시선이 낯선 형태의 글자가 박힌 지도와 현재 위치를 알리는 빨간 동그라미에 멈춰 있다. 지도 위 그가 말한 ‘이곳에서 가장 한식을 잘하는 집’에는 노란 깃발이 꽂혀 있었다. 빗방울을 머금은 바람이 스산하게 불었다. 나는 코트 깃을 여미고 그의 뒤를 쫓았다. 검은색 벙거지를 푹 눌러쓴 채 나보다 서너 발자국 앞서가던 그는 좁은 골목과 골목의 경계를 누볐다. 빨간 동그라미와 노란 깃발이 가까워질 만하면 자꾸 튕겨 나가 애를 먹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엔 그 둘은 멀지 않은 간격으로 화면 위를 떠다녔다. 그는 먹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곤 짧은 숨을 내쉬었다. 바짝 갈라진 그의 입술에서 뽀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고고히 흘러가는 12월의 끝자락이었다.

 선잠에서 눈을 떴을 땐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너무 고요해 변덕스럽게 오가는 소낙비 소리가 방 안에서 왕왕 울렸다. 내가 사용한 침대를 제외한 나머지 세 개의 침대 위에 남색 침구류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인도에서 왔다던 스무 살 학생도 칠레에서 온 자매도 일찌감치 나간 듯했다. 오후 열두시. 일주일 전 한국에서 이곳으로 넘어오는 데도 꼬박 열두 시간이 걸렸다. 나는 방 모퉁이에 놓인 캐리어의 비밀번호를 차례대로 돌렸다. 비밀번호가 올곧게 맞춰지자 캐리어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어지러이 쌓인 옷더미 속에서 반질거리는 모카 포트가 보인다. 여행을 떠나기 전 수경이 선물한 것이었다. 네가 편히 쉬고 왔으면 해서. 수경은 잘생긴 이태리 남자들이 모카 포트를 쓴다는 이야기를 빙빙 돌려 하다가 그렇게 말했다. 작은 상자 속에 갇힌 거인처럼 온몸이 뻐근하게 저렸다. 나는 원두 가루와 모카 포트를 옆구리에 끼고 일 층으로 향했다. 일 층에는 투숙객이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부엌이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의 실무를 담당하는 다니엘이 나를 발견하고 스테인리스 볼을 가리켰다. 조식으로 사용되고 남은 식빵과 샐러드, 베이컨과 에그 스크램블이었다. 나는 다니엘에게 괜찮다고 눈을 맞춘 뒤 냉장고 문을 열어 내 이름을 적어놓은 물통을 꺼냈다. 곧이어 수경이 일러준 대로 모카 포트의 상단부와 하단부를 분리해 하단부에 물을 채웠다. 하단부에 덧대진 필터 바스켓에는 넘쳐흐르지 않을 정도의 원두 가루를 꾹꾹 눌러 담았고, 그다음에 상단부의 홈을 하단부의 홈에 맞추었다. 완연한 형태인 모카 포트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으니 제법 멋이 났다. 기껏해야 내 손바닥 크기 남짓한 이 작은 커피포트도 물이 끓으면 압력 수증기로 커피를 추출해냈다. 나는 증기를 뿜으며 기분 좋게 달그락거리는 모카 포트를 살폈다. 그즈음 내 등 뒤로 “모카 포트네요?”하고 말을 건 것은, 그러니까 반색한 얼굴로 “어, 한국인이에요?”라는 말도 덧붙인 것은 다름 아닌‘그’였다.

 그와 나는 ‘이곳에서 가장 한식을 잘하는 집’이 아닌 낡은 주택가 사이에 어색하게 솟아 있던 레스토랑을 찾았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알렉산더 광장 부근에선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와 함께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테이블 다섯 개가 전부인 이 레스토랑에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대신 거대한 책장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풍채 좋은 백발노인이 동그란 안경을 고쳐 쓰며 편한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책장과 가장 가깝게 놓인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책장에 빽빽하게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며 감탄했다. 대부분 요리책과 역사책이었지만 적잖게는 개기일식이나 페르세우스 유성우에 관한 책도 있었다. 나는 노인이 우주, 달, 별과 같은 물질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느릿하게 다가와 손수 종이를 코팅하여 만든 메뉴판을 건넸다. 조도가 불안정한 조명 아래, 나는 오목하게 휘어지는 메뉴판을 살피며 감자를 곁들인 오믈렛을 골랐고 그는 슈바인 학센을 주문했다. 그제야 그가 노란 깃발을 찾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지도에 남아있는 거로 봐선 최근에 없어진 것 같다고, 자신이 오 년 전에 왔을 때만 해도 그 한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그때 맛본 김치찌개가 평범한 찌개와는 다른 차원의 맛이었다면서 아이러니하게 셰프는 독일인이었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나를 단번에 한국인으로 알아본 사람을 만난 것은 오랜만이었으니까. 나는 내심 독일에 와서 모국어를 내뱉고, 대화를 나누는 일에 가슴이 조금 부풀어 올랐다.

 보름달을 닮은 접시에 음식이 수더분하게 담겨 나왔다.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그득하게 퍼졌다. 화려하진 않지만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는 슈바인 학센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다진 양배추를 얹으며 자신을 ‘사진작가’라고 소개했다. 그러는 동시에 내게 어떤 일을 하는지 물었다. 나는 입안에 있던 오믈렛을 삼키며 디자인 계열의 회사에 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 퇴사를 했다는 말도 더했다. 거짓말로 둘러대는 것보단 솔직한 편이 나았다. 잠시간 그가 관심을 보이며 무어라 묻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 이상 궁금증을 내비치진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백수가 된 과정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적어도 누군가를 잃었다, 할 수는 없었다.

 접시를 얼추 비워가며 그가 물었다. 일주일 동안 이곳에 와서 어디, 어디를 들렸냐고. 나는 브란덴부르크, 포츠담 광장, 체크포인트 찰리, 하고 조그맣게 답했다. 그러자 그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 그런데 왜 독일, 아니 그보다 왜 베를린이죠?
- 베를린이 왜요?
- 관광하러 오기엔 도시가 어둡잖아요. 어쩐지 음울하고.
- 그러면 그쪽은 왜 베를린인데요?
- 아, 이게 관광객이 아니라 사진작가로선 또 말이 달라지거든요.
- ……
- 외면하고 싶은 비극도 다 안고 있는 도시니까.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에 그을린 잔해나 남아 있는 장벽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미치죠.

 그의 눈동자에 자유와 열망이 서렸다. 나는 쭈뼛대다가 입을 뗐다.

- 저는 그저 베를린이 독일의 수도이기도 하고…
 뜻밖에 대답에도 그는 호탕하게 웃어주었다. 그럴 수 있다고, 수도만 찾아 여행하는 사람들 은근 많이 봤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도 내가 아직 베를린 장벽에 가보지 않는 것만큼은 의아해했다. 독일의 수도라는 이유로 베를린에 와서 베를린 장벽은 보지 않는 여자라니. 침묵이 이어졌다. 잔잔했던 피아노곡이 웅장한 변주곡으로 바뀐 뒤였다. 그가 자신의 가방에서 찾은 흑백 사진 한 장을 내 앞에 내밀었다. 길거리에 판매하는 1유로짜리 엽서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일반적인 엽서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는 이전에 자신이 찍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속에는 베를린 장벽이 장엄하게 버티고 있었다. 장벽에 무수히 새겨진 페인팅 중 소련의 레오니트 브레주네프와 동독의 호네커가 키스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전에 프로젝트 취재차에 들렸던 사진전에서 보았던 장면이었다. 그는 시민들이 해머와 곡괭이를 들고 나와 베를린 장벽을 부수기까지 사십오 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양측이 화합을 이뤄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인 것 같다고. 그런데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올진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자그마치 사십오 년… 나는 물끄러미 그가 찍은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 시간이 된다면 꼭 가 봐요. 베를린 장벽, 이 근방이에요.

 레스토랑을 나서며 그는 슈프레강에 갈 예정인데 괜찮다면 동행을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잠시 머뭇대다 따로 들릴 곳이 있다며 에둘러 말했다.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빗방울이 잦아들었다. 나는 그에게 가볍게 묵례하고 그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몇 발 짝 가지 못하고 이내 돌아서며 물었다. 혹시 내가 한국 사람인 건 어떻게 알았냐고, 사진작가 눈엔 척하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다 보이느냐고. 우습고 어처구니없는 질문일 게 빤했지만, 나는 그 빤한 질문의 답이 궁금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자 그가 부드러운 어조로 반문했다.

- 한국인을 한국인으로 보는 게 그리도 신기한 건가요?

 나는 머쓱해져 까만 손등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문득 코끝이 시렸다.

*

 그럴 때가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중 누굴 지워내야 마음이 놓일지 고민하던 시절. 내 대답은 언제나 아버지 쪽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빼닮았다. 반듯한 눈썹과 깊게 팬 쌍꺼풀, 축 처진 눈꼬리와 둥그스름한 콧방울, 태닝을 한 듯 까만 피부까지. 나는 나를 닮은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거북한 기분이 들었다. 닮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닮아야 한다는 것은 축복받지 못할 일이었다. 그에 반해 성격은 어머니와 판박이였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도 잇속을 챙길 줄 알고, 불의를 보아도 모르는 척 눈 감을 줄 아는 여자. 어머니는 이상보단 지극히 현실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무능한 아버지 곁을 떠났을 때도, 나는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버지는… 이국에서 온 사람이었다. 나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레스토랑 근처를 맴돌았다. 이렇게 걷는 것은 낯선 땅에 와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혜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일만 해온 내겐 그랬다. 이게 얼마만의 여행인가. 아니, 내가 여행을 가보긴 했던가. 누구랑 갔었지. 어딜 갔더라. 지난 일주일간 나는 줄곧 이런 식의 패턴이었다. 목적지를 정하더라도 중간에 길을 잃으면 잃은 대로 하루를 보냈고, 무언가를 하기 위해 크게 애쓰지 않았다. 다른 도리가 없었다. 생각에 잠길 때면 나는 무작정 걸어야 했고, 걷는 일 말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정말이지 ‘떠난다’는 건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가능하다면 모든 것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어떠한 기억도 없는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보따리를 꾸리며 내게 그랬다. 나는 내가 어머니에게 가벼운 존재로 잊히진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나는 너무 무거운 기억이 되어 어머니가 홀연히 떠나갈 수 있도록 일조했다. 어머니는 행복할까.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 만난 곳은 앙카라 공원이었다. 아버지는 구겨 신은 운동화를 끌며 작은 공원 안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두루 살폈다. 한 손에 종이 지도를 다른 한 손엔 생수병을 들고서였다. 불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오후, 아버지의 티셔츠는 땀으로 얼룩덜룩해 있었다. 그리하여도 아버지는 적당한 장소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 잔잔한 바람이 불면서,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어쩐지 신비로운 분위기가 묻어나는 장소. 랜드 마크나 유명한 조형물이 있는 장소는 아버지의 선택지에서 가장 먼저 배제되기도 했다. 아버지가 자리를 잡는 나름의 기준은 자못 까다로웠지만 아버지의 기준을 충족한 자리는 명당 중에서도 명당이 되었다. 아무도 와본 적 없는, 누구도 눈길 주지 않는 명당. 그렇기에 필리핀에서 넘어온 아버지가 남산타워나 경복궁이 아닌 한국에서 터키의 수도 이름을 가진 앙카라 공원에 찾았으리라. 마침내 아버지는 공원 내 조각상과 쉼터 그리고 산책로를 지나 버드나무가 울창하게 뻗어 있는 잔디밭에 앉았다. 드문드문 새소리가 들리고 풀 내음이 풍기는 안락한 공간이었다. 아버지가 온종일 등가죽처럼 매고 있던 배낭을 벗어 4절 화판과 연필 케이스를 꺼냈다. 땀이 가득 절어 있던 등판에 얕은 공기가 스쳤다. 정식으로 배우진 못했어도 ‘그린다’는 건 아버지에게 가장 가슴 뛰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능숙하게 스케치를 시작했다. 스케치 도중 연필이 뭉뚝해져도 웬만해선 깎지 않고 이어서 작업했다. 연필 끝이 뾰족하면 섬세한 터치나 날카로운 선을 만들었지만, 반대로 뭉뚝해지면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자아냈다. 뾰족한 연필과 뭉뚝한 연필은 시시때때로 쓸모가 달라지기 때문에 아버지는 두 스타일 모두 활용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연필 끝이 여럿 뭉뚝해지는 동안 아버지는 어머니를 보았다. 머리채를 길게 늘어뜨린 버드나무 아래에 주저앉은 여자, 자신이 그리는 풍경 속에 불쑥 들어온 어머니를 말이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자신이 쥐고 있는 뭉뚝한 연필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젊은 날에 사고로 가족을 잃은 어머니는 아버지와 ‘연애’만 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날씨 좋은 날 데이트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끔은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말도 나눌 수 있는 연애. 어머니는 아버지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가이드를 자처했다. 사실 자유분방한 아버지에겐 가이드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그리해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둘은 계절이 자전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가까워졌다. 언어적으로 소통이 잘 되진 않아도 지금이 ‘좋은 느낌’이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다 안다는 듯 잠자코 들어주는 아버지에게 정이 갔다. 가끔은 자기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정성스레 그림으로 그려다 주는 아버지가 다정하다고 느꼈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막 포장지를 뜯은 캔버스처럼 단정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자음과 모음에 따라 달리 움직이는 어머니의 입술이 좋았다. 턱에서 어깨까지 은은하게 떨어지는 목선이 좋았고, 살결에 아직 가시지 않은 솜털이 좋았다. 어머니를 안은 날, 아버지는 심장 소리가 이토록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분명 어머니를 사랑했다. 필리핀으로 돌아가기 직전 듣게 된 어머니의 임신 소식에도 환희가 앞섰으니까. 그 시각 어머니는 피임약 복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 자신의 무지를 한탄했다. 몸에 커다란 혹 하나가 덜컥 생겨난 기분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세상 물정 모르는 외국인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아무런 준비 없이 엄마가 되어야 했다. 그 과정은 가난의 연속이었다. 어머니는 매 순간 내 존재를 떨쳐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러나 떨쳐내면 떨쳐내려 할수록 어렴풋이 돋아나는 죄의식은 어머니를 마구 옥죄었다.

*

 외진 골목을 벗어나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섰다. 건너편에 산타 복장을 한 남자가 자전거를 탄 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산타로 변장을 했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지나치게 풍성한 수염을 붙인 것은 옥의 티였다. 크리스마스는 이미 며칠 전에 지났다. 남자는 딸아이에게 미처 선물을 전하지 못한 사람처럼 초조해 보였다. 뒷자리에 가죽끈으로 돌돌 말아 묶은 선물꾸러미를 잇달아 확인했고, 장갑을 낀 손으로 어리숙하게 수염을 매만졌다. 신호등에 초록색 불이 들어왔다. 옛 동독 지역을 상징하는 암펠만이 당장이라도 어딘가를 가야 하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산타복을 입은 남자가 재빠르고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돌렸다. 큰길가에 나오자 베이지색 택시들이 줄지어 있었다. 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왼쪽에는 독일 국기가 흔들리는 라이히슈타크가 보였고, 그 주변으로 작은 성당과 시장, 카페와 레스토랑이 모여 있었다. 그 찰나 느닷없이 모든 감각이 빳빳하게 곤두섰다. 타박, 타박 발자국 소리가 나를 에워싸는 느낌이었고 그렇게 생각하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런 느낌은 종종, 이렇게나 두서없이, 나를 몰아쳤다. 나는 애써 고개를 돌렸지만 연한 갈색 혹은 푸른색 아니면 초록색의 눈동자를 피할 수 없었다. 무미건조한 시선, 이방인을 내다보는 눈빛.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했는데 나는 그 무의미함을 도통 견뎌내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나는 까만 피부 때문에 어딜 가든 시선 집중이었다. 친구들은 우리 집이 샤워하지 못할 만큼 가난해서 더러운 거라며 나를 피했다. 그러면 나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께 샤워를 시켜달라고 졸랐다. 어머니는 나를 위로해주지도, 그렇다고 샤워를 시켜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따끔하게 나를 훈계했다. 좀 억울하더라도 학교에서 혼혈인이라고 밝혀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쌀쌀맞고 단호했으며 조금은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신해 학교를 찾은 날, 나는 어머니가 그토록 모질었던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이마를 덮고 있던 머리를 바싹 세웠다. 생전 입지 않았던 정장을 입었고 구두까지 빌려 신었다. 그날은 반 아이들의 미술 작품 전시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크지 않은 행사인 터라 대부분 부모님은 캐주얼 차림으로 학교에 방문했다. 그런 모습이 때와 장소에 맞게 세련되어 보였다면, 아버지의 차림은 너무나 센스 없고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홀로 격식을 차린 아버지는 단연 돋보였다. 웅성거리는 소음 속에서도 아버지의 음성이 또렷하게 들렸다. 아버지는 긴장한 기색 하나 없었다.

- 선아. 아빠 여기 왔어! 선아. 여기야.

 최대한 또박또박 한글을 내뱉는 아버지를 보고, 너무나 이질적인 아버지를 보고,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눈치 없이 내 그림을 보고 자랑스러워했다. 피는 못 속인다고, 자신을 닮아 내가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필리핀 사람이라는 사실은 학부형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가십거리가 되었다. 삽시간에 학교 전체에 내가 혼혈인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달고 다니는 꼬리표도 해마다 늘어났다. 이를테면 깜둥이, 시커먼스, 짬뽕, 잡종과 같은. 어머니는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난 걸까. 나는 내가 창피한 사람이 되는지도 모르고 아버지를 창피해했다. 아무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하루 남기고 시가에 사람들은 분주해 보였다. 붉은 천막들이 모여 있는 시장에서 오르골, 수제 향초와 비누, 우드 카드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곳의 상인들은 관례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거나 판촉에 공들이지 않았다. 간혹 자신의 상점에 관심을 보이는 이가 있어도 특별한 말 없이 지켜보았고, 누군가 상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정직하게 필요로 하는 답변만 했다. 다소 불친절하고 딱딱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배려가 깃들어 있었다. 나는 검정 푯말을 걸어 놓은 찻집 앞에 멈춰 섰다. 푯말에 ‘우리는 자연 그대로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매대에 올망졸망 모여 있는 수십 가지의 종이봉투를 훑었다. 하얗고 도톰한 봉투 위에 시향을 할 수 있는 캡슐들이 얹혀 있었다. 수경이 떠올랐다.

-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데요.

 금발 머리를 질끈 묶은 여자는 망설임 없이 내게 시향 캡슐을 건네주었다. 투명한 캡슐 안에 갖가지 차의 재료들이 불규칙하게 엉켜 있었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향기가 코에 닿았다. 익숙한 향기. 다홍빛 루이보스. 이전에 근무했던 회사에서 자주 마셨던 차였다.

 사표를 낼 때 여사장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조금은 황당해하던, ‘네가 감히?’라는 표정이기도 했다. 사장은 이내 너그러운 미소도 지었다.

- 아버지 일 때문이라면 회사에선 충분히 시간을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 이전부터 생각해온 일이라서요.
- 이전부터?
 

 사장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습관적으로 숨을 죽였다. 사장은 피곤한 듯 미간을 좁히며 매섭게 말했다. 은혜를 모른다는 투였다.

 - 사회생활 일이 년 해본 것도 아니고 선이 씨 받아주는 회사가 흔한 줄 알아? 우리 회사 규모는 작아도 정 넘치는 곳이야. 그건 자기도 인정하잖아.

회사 한편에서 머물렀던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죽도록 열심히 해야 중간은 갈 수 있었던 날들. 피부색 하나로 다른 사원들과 비교되며 핍박당하던 일상. 살아야 하니까 버텼는데, 외로웠다. 그리고 어리석었다. 그때에도 아버지를 원망했으니. 나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 설마 이번 회식 때 내가 했던 말 때문에 그래? 정대리가 다이아몬드면 선이 씨는 금도 은도 못 된다고 한 거. 똑바로 좀 하자는 소린데 간혹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부류들이 있더라고. 내 말 듣고 있어, 선이 씨?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식은 조촐하게 거행되었다. 어떤 결실을 이룬다기보다는 무언가 해치우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민자가 된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로 근근하게 밥벌이를 했다. 하루는 공장에 갔고, 하루는 공사판에 갔다. 시간에 쫓기고 돈에 쫓기는 일상은 지루하게 계속됐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무언의 존재로부터 바삐 도망치는 일과 같았다. 아버지는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일했다. 일터에서 대화 나눌 사람 하나 없었고, 현장에서 문제라도 생기면 원인 제공자로 내몰리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묵묵히 일했다. 그렇지만 어머니와 언쟁을 피할 순 없었다. 걸핏하면 임금이 체불되어 월세를 내지 못했고 당장에 저녁 밥상을 차릴 돈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지독한 생활고에 어머니의 마음이 떠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어머니를 보낸 것도, 그러면 안 됐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사소한 말다툼이었다. 어머니가 문제를 제기했고 아버지가 마땅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둘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상황을 이해하기엔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었고, 존중이 없어 배려하지 못했다. 다만 그날은 좀처럼 큰 소리를 내는 법이 없던 아버지가 벌컥 화를 냈다. 아버지는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사람처럼 씩씩거렸다. 그러다 분을 못 이겨 공장에서, 공사판에서 자신이 번번이 들어왔던 욕을 퍼부었다. 억눌린 감정들이 들끓는 화산처럼 폭발했다. 나는 새파랗게 질려 엉엉 울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익숙하지 않아 얼마간 멍하니 서 있었다. 아버지는 집안의 집기들을 집어 던졌다. 마구잡이로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을 허공에 던졌다. 어떤 것은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졌고, 어떤 것을 떼굴떼굴 내팽개쳤으며, 어떤 것은 움푹 찌그러지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순식간에 어머니의 얼굴이 바닥에 나뒹구는 집기들처럼 일그러졌다.

*

 시장을 둘러보고 후문으로 나오니 한 사내가 눈에 띄었다. 캡 모자를 거꾸로 뒤집어쓰고 카키색 작업복을 입은 사내는 자신이 하는 일에 열중했다. 사내의 주위에 자주색, 파란색, 녹색, 보라색 페인트 통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사내는 비닐을 깔아 놓은 바닥에 멀거니 서서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페인트 붓을 들었다. 그리고 어떠한 질서를 느낄 새 없이 여러 색의 페인트를 벽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사내의 손놀림은 날렵했고 행위 자체에 거침없었다. 행인들은 벽에 페인팅하는 것이 익숙한 듯 힐끗하고 말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붙박여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사내가 팔을 크게 휘두를 때마다 페인트는 벽에 찰싹 달라붙었다가 아래로 맥없이 흘러내렸다. 파란색, 자주색, 녹색, 다시 파란색. 페인트가 아무렇게나 튀고, 흐르고, 뭉개질 때마다 사내는 흡족한 듯 “gut(좋다)”하고 외쳤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느긋하게 흘러가는 풍경. 사내의 움직임에 따라 하나의 벽화가 천천히 완성되어 졌다. 벽에 뿌려진 페인트는 차가운 바람에 서늘하게 식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화가 나기도 하고 어쩐지 서글퍼지기도 했다. 그가 건네준 사진을 꺼내 보았다. 고독하게 서 있는 베를린 장벽이 이따금 흔들려 보였다.

 어머니가 떠나고 아버지는 페인트공이 되었다. 주로 건물의 외벽에 색을 입히는 작업이었다. 위험한 직업이라는 말도 많았지만, 아버지는 한국에 온 이래로 가장 근사한 일이라고 느꼈다. 급료도 괜찮았고, 일손이 부족할 땐 아파트 벽면에 포도 마을이나 하늘 마을, 호수 마을처럼 상호도 새겨 넣을 수 있었다. 회사 내부에서 주어지는 형식과 규범이 있다고 해도 좋았다. 긍정적인 아버지는 생각했다. 새장에 갇힌 새라도 결국 그곳은 새장이 아닌가. 아버지는 작업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작업할 건물 주위를 배회했다. 건물 높이는 얼마나 되고, 그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지내고 있는지, 주변엔 산이 있는지 강이 있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앙카라 공원에서 자신만의 명당을 찾아 헤맸던 것처럼. 아버지는 그 시간이 가져다주는 여유로움과 진중함을 즐겼다. 아버지에게 과업으로 주어지는 건물의 크기와 종류는 다양했다. 고층 아파트 건물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떤 날은 오 층짜리 모텔 건물의 벽을 맡았고, 어떤 날은 노란 유치원 벽을 탔으며, 또 어떤 날은 바닷가에 있는 낡은 등대를 도색하기도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보건소에서, 기숙학원에서, 성인용품 전문점에서, 스파이더맨처럼 납작하게 벽에 달라붙어 열심히… 페인트를 칠했다.

 한 번은 작업 중인 아버지와 마주한 적도 있었다. 휑한 고공에서 둥실 떠 있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 ‘설마’하고 눈을 비비고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올려다봐도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고등학교 하굣길에 수경이 사는 아파트, 이 동네에서는 부유한 층에 속한다는 아파트 단지에서였다. 나는 멀리서도 아버지가 내 아버지임을 알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나를 알아본 것은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높은 하늘 위에서 반드시 들린다는 법도 없는데 그랬다.

- 선이니? 선아!
- …
- 어머. 저 아저씨 좀 봐. 너 부르는 거 아니야?

 수경이 내 팔을 흔들며 아파트 외벽에 바둥바둥 매달려 있는 아버지를 가리켰다. 나는 겨우 친구라고 사귄 수경이 혹 나를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걱정되어 대답하지 못했다. 그 사이 아버지는 로프를 타고 단숨에 땅으로 내려와 내 쪽으로 달려왔다. 언제나처럼 밝게 ‘선아’ 하고 부르면서. 아버지는 수경에게 ‘선이 아빠’라고 말하며 악수를 청하려다 페인트가 덕지덕지 붙은 자신의 손을 보고 거두었다. 수경은 싹싹하게 고개를 숙여 아버지께 인사했다. 그러곤 저 높디높은 벽은 어떻게 페인트칠을 하나 했는데 정말 대단하시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수경의 말에 아버지는 선심 쓰듯 작업장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괜찮다는 데도 특별히 선이 친구니까 보여주는 거라며 볼품없지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파트 옥상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지독한 페인트 냄새가 훅 끼쳤다. 아찔할 틈 없이 바닥에 정신없이 깔린 수많은 로프들이 보였다. 아버지는 조심하라고 말하면서 난간이 있는 곳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어떠한 방해물도 없는 탁 트인 공간. 하늘과 이렇게 가까울 수가 있었나. 마치 온 세상이 내 발아래에 있는 듯했다. 일정하게 세워진 주택들이 만들어낸 골목길이 꼭 미로같이 보였다. 수경은 옆에서 연신 멋지다며 입을 벌렸다. 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내게 종이컵에 탄 커피 두 잔을 내밀었다. 당시 나는 향이 익숙지 않아 커피를 마시지 못했지만, 아버지와 더 나눌 말이 없어 종이컵을 쥐고 있었다.

- 아저씨는 나중에 선이 결혼하면 벽화를 그리러 떠날 거야.
- 벽화요? 어떤 벽화요?
 수경이 두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버지는 물어봐 주길 기다린 사람처럼 대답했다. 이전에도 술에 취한 아버지께 언뜻 들었던 말이었다.

- 전에 티브이에서 봤는데, 베를린 장벽 말이야. 그 나라 사람들한텐 냉전이나 분열을 상징하니까 어둡고 무서워 보이잖니. 그런데 벽을 허물은 기념으로 벽화를 그려 넣었다더라.

- 네, 그런데요?
- 아저씨는 그게 그렇게 보기가 좋았어. 다시 하나가 된 거니까. 같은 콘크리트 담장인데 벽화 하나로 모든 게 달라 보이더라.

 시계를 확인 후 아버지가 허둥지둥 바삐 몸을 움직였다. 손에 들고 있던 주황색 안전모를 쓰고 옥상 기둥에 고정되도록 매듭지었던 로프를 다시금 확인했다. 아버지는 좁은 옥상 난간 위를 평지처럼 여유롭게 걸어 다니며 지상에 떨어뜨린 로프가 꼬이거나 중간에 끊어지진 않았는지 점검했다. 혹시 몰라 달비계와 자신의 몸을 한 번 더 로프로 결속시켰다. 거듭 확인 끝에 아버지는 로프 한 줄과 얇은 달비계에 몸을 맡겼다. 한 손으로는 줄을 팽팽하게 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걸쭉한 페인트가 담긴 통을 들었다. 달비계에 앉아 신중하게 중심을 잡고 내려갈 채비를 마무리했다. 장비를 매만지는 아버지의 손은 익숙한 듯 섬세했고, 숙련된 자만이 뽐낼 수 있는 노련함도 배어 있었다.

- 선아. 커피 맛 죽이지. 스카이라운지가 따로 없지?

 정작 스카이라운지의 근처도 가보지 못한 아버지가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딸에게 물었다. 나는 아버지가 야속하다고 느껴 노을에 얼비친 커피를 가만 보았다. 아버지가 완전히 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별다른 안전장비도 없어 보였는데, 나는 유일하게 아버지를 붙들고 있는 로프 끈을 바라보았다. 매듭이 풀리진 않는가, 만약 로프가 스르르 풀려 버리면 아버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 그에 비해 아버지는 아무런 문제도 걱정도 없이 오로지 일에만 집중했다. 이보다 더 높은 빌딩의 외벽도 숱하게 작업해온 베테랑이었으니까. 아버지가 ‘무사고 베테랑’이라는 사실은 아슬아슬한 로프를 바라보던 내게 안도감을 주었다. 아버지는 계절 따라, 바람 따라, 상황 따라 일하는 것에 대해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보다 자신이 일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공중의 작업 공간은 잔잔하게 바람이 불었고,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으며, 왠지 신비로운 분위기가 묻어나는 장소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외벽에 색을 입히고 글자를 그리다 보면 언젠가 자신이 그릴 벽화를 예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 추락 직전까지도, 아버지는 벽을 쓸고 페인트를 덧칠하며 어머니를 추억했을지도 모른다.

*

 장벽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가쁘게 뛰었다. 긴 시간 정박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처럼 심장이 터질 듯했다. 깨진 아스팔트 바닥 위로 빗방울이 툭툭 스며들었다. 도로를 달리던 승용차에서 클랙슨 소리가 길게 메아리쳤다. 내가 이곳에 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려 사십오 년이나 되는 시간이 지나도 화합할 수 없는 경우가 존재했고, ‘떠난다’는 게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기도 했으며, 무사고 베테랑 페인트공도 추락사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실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곳에 와서 계속해서 갈망했다. 이유와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로 내내 간절히 바랐다. 나는 걷다 못해 뛰었다. 쫓아오는 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겁에 질려 뜀박질을 멈추지 못했다. 발 등께로 구정물이 튀었다. 서둘러 모퉁이를 돌아 번쩍거리는 광장을 지났고, 몇 번의 골목길을 헤쳤으며, 공원과 박물관을 지나쳤다. 수십 개의 눈동자가 사진을 찍듯 나를 담아냈다.

 아버지가 추락하는 순간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던, 아버지가 작업할 빌딩 주변을 살폈고, 동료에게 눈이 와서 외벽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는 당부도 했던 날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아버지는 평소처럼 허리춤에 걸친 장비를 점검하고, 달비계의 수평도 맞춰본 후 숨도 한 번 고르며 외벽을 탔을 것이다. 공중에서 떨어질 때 아버지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많이 놀랐겠지. 살고 싶었을 거야. 그런데 혹시 웃고 있진 않았을까… 세상은 비 닿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나는 우산을 쓸 겨를 없이 숨을 헐떡이며 달렸다. 우두커니 서 있는 장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파편이 튀고 못으로 긁혀 어느 곳도 성하지 못한 장벽 위에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동그랗게 몸을 말고 추락했을 아버지를 떠올렸다. 마음속에 동그란 파문이 일었다.

 눈이 내렸다. 아버지는 중심을 잃고 휘청하며 손에 쥐고 있던 페인트 통을 떨어뜨렸다. 페인트 통이 포물선을 그리며 까마득한 높이에서 지상으로 떨어질 때,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생명줄을 겨우 붙들었다. 소복하게 쌓인 눈 더미에 붉은 페인트가 물들었다. 가냘픈 몸이 좌우로 정신없이 흔들리다가 로프가 탁, 하고 끊어지는 찰나 아버지는 색색의 외벽에 둘러싸여 빠르게 추락한다. 아버지의 주위로 하얀 눈송이가 흩날렸고 군데군데 포도 마을이나, 하늘 마을, 그것도 아니면 호수 마을과 같은 글자들이 피어올랐다. 비에 젖어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죄책감과 연민이 가슴 구석구석을 두드렸다. 울음이 목구멍 안으로 계속해서 차올랐다. 비가 오는데도 사람들은 장벽 앞에서 종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12월의 끝자락을 장식하고 있었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귓가에 빗소리와 경쾌한 음악 소리가 곡예를 부리며 울려 퍼졌다.

박수진(협성대학교 문예창작학과4)  pressyu@ynu.ac.kr

<저작권자 © 영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Back to Top